2017년 12월 10일, 대한문 앞에서 수천명(주최 측 추산으로는 수만명)의 의사들이 모여서 문재인 케어 반대 집회를 가졌다. 그로 인해 어제 오늘 인터넷에서는 그와 관련한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나는 왜 국민들이 문재인케어를 반대해야 하는지, 만약 대통령이 말한대로 시행되었을 때 국민들에게 오는 피해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선 '문재인케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한 기사의 댓글 중 '문재인케어는 오바마케어 보고 따라한 것 아니냐'는 댓글이 있었다. 이는 아주 큰 오해이다.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지금까지 환자들이 100% 본인 돈으로 내던 비급여 항목을 모두 급여화하겠다는 것.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해야 이 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면 진료비가 나온다. 청구서를 잘 살펴보면 '본인부담금'이라는 것과 '공단부담금'이라는 것이 있다. 이 중 국민들이 내는 돈은 각 항목의 '본인부담금'을 합친 것이다.
[출처: http://blog.daum.net/sunanmin/15674886]
위 사진을 보면 크게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이 있고 '급여'에서는 본인부담금과 공단부담금이 나누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급여' 항목만 보면 총 1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그 중 24만원만 환자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공단에서 내준다. 그리고 여기에 환자가 100% 내는 비급여 항목이 더해져서 총 결제하는 금액이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이 중 '비급여' 항목을 없애고 이를 모두 '급여'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위 병원비 예시에서도 보이듯 환자의 급여 치료비보다 비급여 치료비가 2배쯤 되기에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에게 무척이나 좋을 거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문제는 (미용 성형을 제외한) '모든'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치료를 받으면서 돈만 적게 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급여화 되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모두' 급여가 되었을 때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어떤 항목이 '급여'가 된다는 것은 국가(=건강보험공단, 심평원)가 그 항목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이다. 어떤 질환으로 온 환자에게는 A 검사를 해야 하고 B 치료를 해야 한다고 정한 것이다. 만약 정한 것과 다른 검사 혹은 치료를 진행한다면 그것은 '삭감'된다. 즉 병원이 돈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환자 혹은 의사가 그 질환에 대해 C 검사를 진행하고 D 치료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했을까? 만약 그 검사와 치료가 국가에서 허가한 것이라면 환자는 100% 비급여로 C검사를 진행하고 D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국가에서 '이 검사와 방법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으나 건강보험으로 지원하지는 않는 것이니 환자가 100% 본인부담으로 돈내고 검사 및 치료받으세요.'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모두' 급여가 되면?
만약 국가가 C검사와 D치료를 급여화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C검사와 D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환자의 선택권이 극도로 제한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모두 급여화한다는 것은 C검사와 D치료도 급여화되는 것이 아닌가?
현재 비급여인 어떤 검사와 치료방법들은 급여화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검사와 치료가 급여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급여화되지 않았던 항목들은 다 이유가 있다. 1) 비용 대비 치료 효과가 크지 않다. 2) 의학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확립되지 않았다. 등등이다.
예를 들어보자.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디스크 문제가 아닌가 걱정되어서 MRI를 찍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원하면 그냥 MRI를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허리통증이 있는 환자에서 허리 MRI를 시행했을 때 이상이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또한 MRI에서 이상이 나왔더라도 그것이 허리 통증의 원인일 가능성도 낮다. 이는 1번 항목에 해당한다. (2번 항목에도 일부 해당한다.) 돈을 많이 들여서 MRI를 찍어도 그것이 허리 통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리MRI를 비급여로 정한 것이다.
만약 허리MRI가 급여화가 된다면? 국가는 매우 특수한 경우에만 허리 MRI를 시행할 수 있게 제한할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아무리 돈내고 허리 MRI를 시행하고 싶더라도 찍을 수가 없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떤 질환을 오래 앓고 있던 사람이다. 최근 외국에서 본인 질환에 대한 혁신적인 치료약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그 약이 국내로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상당한 검토 과정을 거친 후(=시간이 흐르고) 신의료기술이라 하여 비급여로 그 치료약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흘러서 건강보험공단에서 급여화하기로 결정하면 급여화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 급여화가 된다면?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고 급여화되는 시간(적어도 몇 년간)동안 본인 돈을 내고서도 새로운 치료약을 이용할 수가 없다.
최근 이슈화된 면역항암제 사례가 '급여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http://health.chosun.com/news/dailynews_view.jsp?mn_idx=196837
면역항암제라는 비싼 항암제가 급여화되면서 대상 암이 매우 줄어들었다. 그 결과 기존에 치료받던 환자 중 대상이 되지 못한 환자들은 더이상 치료를 받을 수 없게된 것이다.
모든 암환자에게 치료를 허가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제한적인 재정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비용을 지출하기 위해서는 '검증된' 암환자들에게만 재정을 지출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이 글을 읽고 문재인 케어가 왜 환자들에게 나쁜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보장성 강화는 매우 필요하다. 나 역시 내가 복용하던 약이 급여화 되면서 한 달에 지출하던 약값이 확연히 줄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지출하는 돈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장성 강화가 나의 선택권을 줄여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기억하자.
'보장성 강화하라. 대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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