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올라왔다. (링크) 그 이후 이 법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봤다. 지금까지 찾은 내용을 정리해보겠다.
1. 의료법 개정안
2018년 10월 윤후덕 의원과 손금주 의원이 각각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법안을 입안했다.
각각 법안을 검토해보면
윤후덕 의원은
① 성폭력범죄를 범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②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하고,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자격을 정지
하는 법안을 제시했고
손금주 의원은
위반 법률과 무관하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
하는 법안을 제시했다.
2. 의료인 면허 취소 사유 개정 연혁
나는 이전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취소되는 경우가 없다가 이번에 처음 법안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찾아본 결과 아니었다. 국회 전문의원 검토보고서에 깔끔히 정리되어 있어 가져와봤다.
2000년 의료법 개정 이전에도 유사한 법안이 있었다. 2000년 이전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 보건복지부(혹은 해당) 장관의 임의로 면허를 취소할 수 있었다가 2000년 이후에는 특정 범죄로 형을 받았을 경우 무조건 취소되게 변했다.
이번에 제안된 의료법 개정안은 이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 무조건 취소되게 하는 안들이다.
3. 다른 직종과의 비교
형사처벌을 받았을 경우 직종에 제한을 두는 법을 찾아보니 꽤 많았다.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을 결격사유로 한 것은 준법의식에 문제가 있는 자를 배제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종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을 결격사유로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중략)
먼저 범죄의 종류를 당해 자격이나 영업과 관련되는 범위로 한정하여야 한다. 변호사․공인중개사․감정평가사․세무사 등 도덕성․신뢰성 또는 윤리성의 확보가 긴요한 직업의 경우에는 범죄의 종류와 관계 없이 일정한 형벌 이상의 전과사실을 결격사유로 하는 데에 별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범죄의 종류를 당해 자격이나 영업과 관련되는 범위로 한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1
변호사, 공인중개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사회복지사 등은 형사처벌을 받았을 경우 형의 집행이 끝나기 전까지 면허가 취소되었다. 심지어 변호사는 사적으로 비행을 저질러도 징계받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의료인은 오히려 예외에 속했다. 의료인 역시 상기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직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나 2000년 개정안 이후 예외에 속하게 되었다. 왜일까?
4. 의료인이 형사처벌 받은 경우 면허취소되는 사례에서 예외가 된 이유
2000년 의료법 개정 이유를 찾아보자.
행정규제기본법에 의한 규제정비계획에 따라 의료에 관한 종전의 규제를 폐지하거나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함으로써 국민의 의료 이용편의와 의료서비스의 효율화를 도모하려는 것임. 2
이 정도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약사법도 2000년 개정되면서 결격사유에 '약사법 등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로 한정된 것을 보면 의약분업으로 '효율화'를 한다는 명목으로 없앤 것으로 보인다.
5.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형사처벌 받은 경우 면허가 취소되는 법은 다른 나라에도 많다.
일본의 경우 벌금형 이상만 받아도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독일의 경우 의사가 형사범죄와 관련이 될 경우, 일반 형사처벌과 별도로 보안처분으로서 직업금지 명령이 가능하고 이외에도 의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의사의 형법위반에 대해서 확정판결 혹은 법원명령에 따라 의사의 직무수행에 부적합하거나 의심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면허의 취소나 사전정지가 가능하다.
(심포지움 자료집 중 첫번째 발제자 자료에서 가져왔다. http://www.koreanbar.or.kr/pages/board/view.asp?teamcode=&category=&page=1&seq=8635&types=9&searchtype=&searchstr=)
6. 현재 법의 문제점
2000년 법 개정 이후 현재 의료인의 결격사유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간간히 제시되었다. 강간, 폭행, 절도, 살인, 사기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의료인 면허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인의 사회적 지위, 다른 직역과의 비교 등을 했을 때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무작정 형사처벌 받았을 때 면허를 취소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바로 '업무상 과실치사상' 때문이다.
대법원은 '의료사고에서 의사의 과실 여부는 같은 업무 또는 분야에 종사하는 평균적인 의사가 보통 갖추어야 할 통상의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사고 당시의 일반적인 의학 수준, 의료환경과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통상의 주의의무'라는 것이 상당히 주관적이기에 의사들은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어진다. 또한 최대한 덜 위험한 진료를 선호하게 되어 국민의 이익에 반하게 될 수도 있다.
7. 나의 의견
현재 의료법에 구멍이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기에 이를 고쳐야 할텐데 이는 2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1) 2000년 개정안 이전으로 돌아간다.
형사처벌 받았을 경우 면허 취소가 가능하게 바꾸는 것이다. 대신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살인, 강간, 폭행 등의 중범죄로 처벌받았을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면허 취소를 해야 한다. 의료법 위반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결정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여론에 휩쓸릴 수 있고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2)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형사처벌 받는 경우를 줄인다.
내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독일, 일본의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형사처벌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매우 중대한 과실로 환자에게 해를 가했을 경우에만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히 많은 의료인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피소된다. (무죄 판정을 받더라도 피소된다는 사실 자체가 의료인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그리고 중과실이 아니더라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실형을 선고받는다. 이런 상태에서 형사처벌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게 되면 방어진료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중과실인 경우에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피소되게 바꾸고 처벌한다면 의료법이 개정되더라도 의료인의 스트레스는 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국민의 공감대를 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사의 과실이 없이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의사의 처벌을 요구하거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인데 의사의 과실이 있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국민들은 반발할 것이다.
어떤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국회 전문위원 역시 '의료인의 주의의무 준수 강화를 통한 국민 건강권의 보호 필요성 및 위험회피적 의료행위 발생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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