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동남아

[4] 스쿠터 타고 우붓 여행하기 (2)

Null0 2014. 5. 6.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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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 Gajah는 Gunung kawi에 비해 찾기 훨씬 쉬웠다. 길가에 위치해있고 안내표지판도 잘 되어 있었다. 구눙 카위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큰 유적지라 그런지. 

주차장에 들어서서 쓱 훑어보는데 스쿠터가 세워져있는 곳도 안 보이고 주차장도 따로 없는 것 같아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했다. 주차비에 대한 언급은 딱히 못 찾았는데 나중에 나올 때 옆에 있던 아저씨가 주차비를 얼마 내라고 했다. 대충 몇천 루피아 정도였던 듯.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냥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돈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액수가 크지 않으니 그냥 패스~

스쿠터를 몰고 다닐 때 가장 문제는 바로 헬멧을 보관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발리 사람들은 그냥 스쿠터나 오토바이에 놓고 다니던데 나는 내 것도 아닌 걸 차마 그렇게는 못해서 그냥 헬멧을 들고 다녔다. 헬멧 자체가 부피와 무게가 꽤 되기 때문에 이것도 짐이었다. 


수많은 가게들을 지나니 입장권 파는 곳이 나왔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데 제주도의 만장굴 들어가는 분위기가 풍겼다. 뭔가 어두컴컴한 숲속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 앞에는 안내 표지판이 있고. 사진을 찍어오지는 못했지만 고아 가자에 가보면 누구든 공감할 듯. 이곳에는 관광객이 꽤나 됐다. 중국인, 호주인 등등. 여전히 아침 이른 시간이라 걸리적거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단을 한참 내려가다 보면 유적지스러운 풍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수많은 작은 탑들. 이게 누군가 조각한 탑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산에 가면 보이는 탑들처럼 사람들이 그냥 쌓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약 30~40개 정도의 이런 탑들이 입구에 있었다. 돌로 탑 쌓는 문화가 ‘매우’발달한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그저 그런 광경이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신기해보일 만한 문화인 듯했다.


탑 앞쪽으로는 이런 조각이 보인다. 이게 연못인지 목욕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는 물고기가 사는 연못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있고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으나 여전히 화려한 조각의 향기를 풍기는 것으로 봐서 전성기에는 대단한 구조물이었을 것 같다. 이 조각은 들고 있는 항아리에서 물이 나오지만 책에 보면 다른 곳에는 양 유두에서 물이 나오는 곳도 있다.



내 앞에 독일인 가족과 현지 가이드가 있었다. 영어였으면 옆에서 귀동냥이라도 했을텐데, 독일어 실력은 청해가 될 정도는 아니어서 실패했다. 만약 가이드가 있었다면 조금 더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을테다. 저 앞에 보이는 상도 의미있는 석상.



고아 가자의 본 모습은 바로 이 도깨비(?)의 입 안에 있다. 입구 주변의 화려한 조각들과 사롱을 입고 입구를 지키는 저 석상들에게서 이국적인 냄새가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저 주변 조각들을 조금 더 관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도깨비의 입 안에 들어가면 T자형으로 굴이 나 있고 각 면에 위의 석상들이 있다. 제일 위의 석상은 누가 봐도 남근을 형상화한 것. 가운데 목이 나간(?) 석상은 잘 모르겠고 제일 아래는 코끼리 모양의 가네샤 상이다. 각 석상들마다 그 앞에 예물들이 엄청 많이 쌓여 있었다. 


도깨비 입에서 나와 고아 가자를 조금 더 둘러봤다. 석탑들도 보이고 내려가는 길이 하나 보였다. 길이 있으니 당연히 내려갔다. 


이런 길이 있고 특별할 것 없는 곳들이 펼쳐졌다. 쭉 내려가니 작은 절 하나가 있었다. (절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절을 생각하면 안된다. 그저 석탑 하나 있는 정도.) 석탑 앞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그곳에 온 여행객들에게 물을 뿌려주며 축복해주고 있었다. 얼떨결에 나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는데 나무에 Temple이라는 말과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잘 닦인 길은 아니고 산길 같은 느낌의 길과 함께. 그 누구도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쪽으로 갔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산길 느낌이었다. 사람도 없고 주변에 소와 닭이 있는 그런 길. (내가 소나 닭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저렇게 마른 소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한참 가는데 누군가 길을 막고 돈을 받았다. 20000 루피아였던 것 같다. 쭉 가면 절이 하나 있고 어찌어찌 가면 절이 하나 더 나온 후 마을이라고 했다. 험한 길이라는 설명은 없었다. 그냥 조금만 가면 된다는 뉘앙스였다. 그래서 그냥 돈을 내고 계속 가던 길을 갔다. 가다 보니 절이 나왔다.




이게 그가 말한 첫번째 절이었던 것 같다. 웬만한 산속 절들은 딱 이정도 생각하면 맞는 듯하다. 기도할 수 있는 석탑 하나. 두번째 절을 향해 계속 갔다. 한참을 가는데 길이 점점 이상해졌다. 어쩌면 갈림길이 있었는데 내가 잘못된 방향을 택했나보다. 절대로 가기 쉬운 길이 아니었다. 길은 점점 험해지더니 아침에 내린 비와 이끼의 조합으로 미끄럽기까지 했다. 한손에는 헬멧을 들고 한손에는 카메라를 들었으며 등에는 큰 가방을 메고 사롱까지 입은 상태로 걷기에는 매우 안 좋은 길이었다. 가다가 사롱에 내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바로 사롱을 벗어서 허리에 맸다. 성스로운 곳이고 뭐고 간에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했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사진에 길이라고 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지만 저게 길이다. 사진도 거의 못 찍었다. 사진 찍기 위해 움직이다 조금만 헛 딛으면 그대로 황천길이었다. 과연 이 길이 맞는지 계속 의심했지만 이상하게도 뒤돌아서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조건 앞으로, 앞으로. 미끌미끌한 바윗길을 조심조심 밟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길은 저 천을 향해 나 있었다. 순간 1년 전 스페인이 떠올랐다. 난 왜 산만 오면 이렇게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찍는 것일까-_-



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바윗길은 저 천을 건너라고 했다.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저 다리를 건너는 것. 사진으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한 손에 헬멧을 들고 흔들거리는 다리를, 그것도 4~5 미터 아래에는 강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길이 이것뿐이니 어쩌랴. 건넜다. 

건너고 나니 더 문제였다. 아예 길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길이 보이기는 하는데 나의 현위치와 저멀리 보이는 길을 연결하는 길이 없었다. 그 사이에 큼지막한 바위가 막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차례 한 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이번에도 돌아가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바위를 어떻게 탈지를 고민했다. 이러저러한 방법을 고민하다 헬멧을 미리 바위 위에 올려놓고 바위를 타기로 했다. 다행히 바위는 생각보다 안 미끄러웠고 겨우겨우 바위를 올라 길을 탈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산을 다시 오르니 근사한 호텔이 하나 나왔다. 아마 호텔에서 냇가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내가 올라온 것 같았다. 직원들이 이상한 곳에서 올라오는 나를 보고도 별 반응을 안했다. 그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왜인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또다시 생사의 갈림길에서 도시문명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이 내 머리를 맴돌고 있었으니깐.



그 호텔을 나서니 이런 마을이 보였다. 아마 20000루피아를 받고 내게 길을 알려준 그 사내가 말한 마을이 이 마을은 아니었을게다. 이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외국인이 잘 오지 않을 법한 동네에 나타난 외국인이었으니 그랬겠지.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발리 마을에는 으레 있는 중앙광장(?)을 찾았다. 역시나 있다. 그곳에서 비를 피했다.




이곳이 내가 비를 피한 곳이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나와서 담배 한대 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통해 내 위치를 확인하니 고아 가자에서 꽤나 왔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 30~40분 정도 걸어야 했다.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한 젊은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느냐는 안부 질문 후 교통수단을 원하냐고 물었다. 태워주겠다고. 얼마에 태워줄거냐고 물으니 저 오른쪽에 보이는 가게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과 대화를 하더니 30000루피아를 불렀다. (내 스쿠터 하루 대여비가 50000루피아.) 가격도 비쌌고 그냥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해서 그냥 됐다고 했다. 그녀는 실망하며 떠났다. 아마 용돈벌 거리가 사라졌으니 그랬겠지.

비가 어느정도 그치자 지도를 보고 고아 가자를 향해 걸었다. gps가 없었으면 도대체 어떻게 여행을 했으려나. 그냥 동네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걷다보니 어느 새 큰길이 나왔다. 그렇게 30~40분을 걷다 보니 내 스쿠터를 찾을 수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옆에서 주차비를 요구하는 아저씨에게 돈을 내고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스쿠터를 밟으니 1분쯤 걸렸나… 역시 바퀴 달린 교통수단이 좋다.


다음 목적지는 Yeh pulu였다. 구글 지도에는 우붓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 지도는 틀렸다. 지도 상의 예뿔루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오히려 고아 가자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예뿔루를 갔던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으니 내가 Temple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서 개고생한 길이 어쩌면 Yeh pulu로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아마 길을 안 헤매고 잘 갔으면 나도 모르게 예뿔루를 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갔다가 또 길을 잃고 헤맬 걱정에 그냥 예뿔루는 포기하기로 했다. 언젠가 기회가 또 있으면 그 때 갈 수 있겠지. 


예뿔루를 포기한 다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스토랑 xx선’에 뽑혔다는 우붓의 La view 레스토랑을 찾아 헤맸다. 쏟아지는 폭우 아래에서 완전 비맞은 생쥐 꼴이 되어서 길을 헤맸지만 그 레스토랑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그 역시 나중에 찾아보니 어느 근사한 리조트 내부의 식당이었다. 덕분에 내 가방과 겉옷이 비를 참 많이 맞았다. 


스쿠터 탄 첫 날 여행은 그냥 이렇게 끝을 냈다. 비오는 날 타는 스쿠터는 우비가 없으면 그닥 권할 게 못된다. 날만 좋다면 강추! 탈 때 긴팔, 긴바지, 장갑은 꼭 챙기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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