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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1년] 본4 실습

의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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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0

6년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의사가 되었다. USMLE step 2 CK를 7시간만에 마치고 시험장에서 나오는데 총대로부터 합격 여부를 확인하라는 문자가 왔다. 들뜬 마음에 모바일로 국시원 사이트에서 합격 여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실패. 낙담하다가 그래도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서 ARS로 전화해보니 300원의 정보이용료가 붙는다길래 끊었다. PC 방에 갈까 하다가 PC 사용료보다 정보이용료가 싸서 다시 ARS를 했는데 수험번호를 요구해서 또 다시 실패. ‘330원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내 수험번호가 의대 왕족 숫자 중 하나였다는 것이 떠올라서 다시 ARS로 전화해서 입력해보니 합.격. 66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들뜬 마음에 아버지께 전화드려서 그냥 USMLE 시험 끝났다고 얘기했더니 아버지가 대뜸 ‘축하한다.’고 하신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이미 국시원 사이트에서 합격을 확인하셨고 어머니에게도 연락이 간 상태. 그래도 집에 전화해서 어머니께도 직접 알려드렸다. 2012년 1월에 있던 두 개의 거대한 산 중 하나를 넘은 셈. (남은 하나는 USMLE. 이건… 진짜 떨어질 듯ㅠㅠ)

합격 소식을 확인한 후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들려졌다. ‘나도 이제 의사다!!!’라는 마음에 너무 들뜬 나머지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순간 가진 것이다. 내 마음 속에서 이런 것이 느껴진 순간 정치인들의 ‘몸을 낮추겠다’라는 발언이 이해가 갔다. 절대 오만한 의사는 되지 말아야 할텐데. 남들에게는 기분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몸을 최대한 낮춘’ 의사가 되어야 겠다. 사실, 내가 아는 지식은 아직 의사라고 불리기에 부끄러운 수준이니…..

합격 기념으로 본과 4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추려본다.

본1: 3분기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본과 생활 중 유일하게 이성 문제가 엮여 있었고 그 때문인지 아니면 기숙사 지하자학실이 공부하기 좋아서였는지 본1,2 중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 성적도 이 시기가 가장 좋았다. (그래봤자 어디가서 내세울 성적은 못 되지만;;)

본2: 기아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를 가버리는 바람에 3분기를 그대로 날렸다. (야구는 내 대학 6년간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했던 종목이다. 공부보다도 더욱…) 하필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갔고 그 7차전이 3분기말 바로 전 날이었다. 눈물나는 성적만이 그 시기를 추억하게 한다. 나지완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걸 보자마자 티비 끄고 가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본3: 임종 직전 2주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정신과,신경과를 단 1주일만에 보는 엄청난 시험인 임종(임상종합평가). 동기들은 빠르면 8월, 보통 9월부터 공부를 시작하는데 나는 이것저것 놀면서 공부하다 임종 직전 2주에 몰아서 했다. 퍼시픽 내과를 1주일도 안되는 시간에 완독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론 문제는 풀지 않았고 기억에도 전혀 남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자학실 가서 공부하고 점심먹고 공부하고 저녁먹고 공부하고 기숙사 와서 자고’를 일주일 간 했다. 1주일 해보고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다음 1주는 좀 쉬엄쉬엄하긴 했다.

본4: 실기시험 끝난 10월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생의 황금기를 부르짖으며 여행을 참 많이 갔다. 나름 국시의 압박을 받으면서 멀리 놀러간 것은 문경새재밖에 없지만 서울도 나름 많이 돌아다녔다. (이 블로그의 ‘여행이야기-국내여행’은 대부분 그 시기에 여행한 것이다.) 언제 또 이렇게 매일매일 하릴없이 여행다닐 수 있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4년 내내 가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본과 4년을 힘들게 다니는 사람도 있고 편하게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후자인 듯하다. 물론 성적을 포기하고 얻은 대가이기는 하지만 4년간 재시없이 무사히 넘겼다는 것에 만족한다. 앞으로 인턴-레지던트-군의관(공보의)도 이렇게 무난하게만 가면 좋겠다.

다음 포스팅은 ‘[2012년]공보의’ 혹은 ‘[2012년]인턴’으로 올라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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