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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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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넌 어떤 사람이 될래?' 어린 아이들에게 흔히 하는 질문이다. '착한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이요' 등등. 전형적인 대답이 나오게 된다. '넌 어떤 의사가 될래?' 의대생이라고 하면 99% 나오는 질문이다. 질문의 목적은 90%의 확률로 '어떤 과'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한 10%만이 말 그대로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를 묻는다. 위와 같은 질문에 많은 의대생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한다. 사실 정답이다. 상위 10%에 들지 않는 학생이라면 무슨 과에 갈지는 모르니깐. 꼭 성적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의대 본과 1,2,3,4학년을 지나면서 원하는 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깐. 살짝 삐져나간 글의 의도를 다시 돌려보자. 오늘 포스팅하고자 하는 글은 10%가 묻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실습을 돌면서,..
처음으로 환자와 싸우다. #1. 태어나서 처음으로 환자와 싸웠습니다. 학생이 무슨 환자와 싸울 기회가 있겠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2. 산부인과 실습에서는 예진을 봅니다. 예진에서 무엇을 하냐 하면 교수님 외래 진료볼 때 시간을 좀 더 줄이기 위해 학생이 초진환자의 과거력, 가족력 등등을 미리 묻고 기록을 해두는 것입니다. 예진을 보는 것을 통해서 학생은 환자와의 직접 대면해서 질문할 수 있고 교수님 입장에서는 10분 가량을 절약할 수 있으니 윈-윈인 것이죠. (물론 학생이 없으면 인턴 선생님이 예진을 봅니다. 외래의 시간 절약이 예진의 최대 목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죠.) 하지만 문제는 환자는 예진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예진보는 사람이 학생인지는 더더욱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
산부인과 외래 참관 이번주에는 산부인과 외래에서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외래,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에피소드이지만 제게는 기억에 남는 몇몇 환자분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1. 첫 날, 첫 환자분이었습니다. 불임클리닉을 담당하는 교수님을 따라 도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불임클리닉에서 환자를 만났습니다. 임신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불임클리닉을 찾은 30대 중후반의 외국인 여성분이었습니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해서 그저 전형적인 불임 환자가 외국 국적만 가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교수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그냥 평소에 우리말로 하는 질문들을 영어로 물어보셨습니다. 월경력이라든가 산과력 등등을 물은 후 환자의 개인 정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뭐하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
NSVD 처음 본 날!! #1. 오늘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신환이 3명인가 4명이 들어왔는데 다들 IUP 38주 정도 되는 산모였다. 기록을 보니 labor가 있고 무언가가 나와서 분만실을 찾아온 산모들이었다. 즉, 분만이 임박한 산모들이 온 것이다. 하지만 오전은 평온했다. 레지던트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조금 바빠 보이기는 했으나 소리지르는 산모는 없었고 분만실은 그저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점심 먹고 돌아온 이후 무언가 다들 정신없어졌다. 내 뒤에서 그냥 누워있던 산모가 가족분만실로 이동하고 간호사나 레지던트 선생님들 입에서 '분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분만실도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그 장소를 사용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구석에서 ..
분만 볼 기회를 놓치다. #1. 오늘은 하루종일 분만실에서 잉여짓하면서 보냈다. 구석에 있는 컴퓨터 앞에서 주변에서 들리는 산모들의 고통스런 비명소리를 배경음으로 깔고 위키 quote에서 House 대사나 보면서 6시간을 보냈다. 다른 과목 공부를 하고 싶어도 했다간 눈치보일 것 같은 분위기라(그렇다고 산부인과 공부는 하기가 싫고;;) 그냥 컴퓨터만 죽어라 했다. 가끔 심심하면 파일로 된 Williams나 읽고.. 5시에 conference가 있었는데 3시 반 쯤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은 산모가 있었다. 계속 소리지르시는 게 분만이 임박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정말 신호인지는 모르겠다. 산부인과는 문외한이라-_-) 아- 오늘 드디어 분만을 보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만실에서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
처음으로 C-sec 본 날 #1. 산부인과 실습을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이 딱 두 개 있다. 바로 C-sec 하나와 분만 하나는 꼭 보자는 것이었다. 본1 때 해부한 카데바가 남자분이어서 여성 생식기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본2 때 산부인과를 공부했기에 정말 산부인과에 대한 이해도가 제로였다. 그래서 내가 그나마 관심있는 이 두 개는 꼭 보자는 다짐을 한 것이다. 그 중 하나인 C-sec을, 말로만 수백번을 들은 바로 그 제왕절개술을 2010년 9월 13일에 처음 봤다! #2. 아침에 C-sec이 3개인 것을 확인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이미 한 개는 끝난 상태고 한 개는 (내가 좀 늦장부렸더니) 산모가 이미 수술실에 들어와 있었다. 교수님 이름과 소문만 들었지 어떻게 생긴 분인지를 몰랐기에 긴장 엄청 타면서 수술을 지켜봤다. 첫 ..
<스물일곱째주~스물여덟째주> 신촌,강남 신경과 #1. 누군가 내게 본1,2 때 가장 재밌게 공부한 과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망설임없이 신경과학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본과1학년 때 생화학과 생리학, 조직학, 해부학에서 헤매면서 의학공부에 대한 의욕을 점점 상실해갈 때 기초신경과학 분기말 공부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문족 위주의 공부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기초신경과학이 분기말 전날(!) 내게 어느 정도의 이해를 허락하였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쭉쭉 뻗어있는 수많은 tract 들이 조금, 아주 조금 개념이 잡혔다. (물론 시험을 보고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2학년 때의 임상신경과학은 수업이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stroke 파트는 내과학에 가까웠고 epilepsy는 그저 웃음만 ..
<스물다섯째주~스물여섯째주> 신촌,강남 정신과 #1. 정신과 실습을 돌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만 다른 과는 대부분 의학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야하는 반면 정신과는 환자의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도 치료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냥 수다떨듯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우선 광주에서는 환자와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매우 쉬웠다. 폐쇄병동이라 환자는 항상 자신의 자리나 복도에 있고 내가 찾아가서 말을 걸기만 하면 되었다. 간혹 부정적으로 대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친절하게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셨다. 하루종일 병동에만 갇혀 있으려니 심심하고 말상대가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이야기할 상대가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