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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NSVD 처음 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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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신환이 3명인가 4명이 들어왔는데 다들 IUP 38주 정도 되는 산모였다. 기록을 보니 labor가 있고 무언가가 나와서 분만실을 찾아온 산모들이었다. 즉, 분만이 임박한 산모들이 온 것이다.

하지만 오전은 평온했다. 레지던트나 간호사 선생님들은 조금 바빠 보이기는 했으나 소리지르는 산모는 없었고 분만실은 그저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점심 먹고 돌아온 이후 무언가 다들 정신없어졌다. 내 뒤에서 그냥 누워있던 산모가 가족분만실로 이동하고 간호사나 레지던트 선생님들 입에서 '분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분만실도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그 장소를 사용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구석에서 내 할 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 앞에 오더니 

R: 오늘 분만이 조금 있다가 있을 거 같은데 가족분만이라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어요. 교수님께 컨펌 받고 다시 알려줄게요.

라고 하셨다. 아, 설마 어제와 같이 그저 학생의 서러움을 또 겪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기로 했다.

#2.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르고 분만실이 분주해졌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오늘 하루 분만이 4개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응급 C-sec 하나에 NSVD 3개로 추정되었다. 설마 3개 중에 하나는 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산모가 분만실로 이동했다. '오호,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레지던트 선생님의 부름을 기다리는데 앞으로 그 산모 담당 교수님 파트 학생이 쓱 지나갔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분만은 학생 한 명밖에 못 보기에 쟤가 들어왔단 말은 내가 못 본다는 소리였다. 무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머지는 다 가족분만인데 이 분만을 못 보면 어찌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교수님이 오시고 그 분만은 그 파트 학생이 들어갔다. 난 그저 내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만 계속 했다. 주변 간호사나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지나가다가 '어, 왜 안 들어갔어요?'라고 계속 물으셨고 난 '그 파트 학생이 들어갔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저 멀리서 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의 마음도 철렁 내려앉았다. 결국 나의 산부인과 목표인 NSVD 보고 C-sec 보는 것이 실패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애도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산모도 나와서 휴식을 취했다. 교수님도 나오고 학생도 나왔다. 무언가 분만실에 있는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사실 분만실에 있는 내내 학생은 거의 그림자다;;) 난 그저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3.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레지던트 선생님이 

R: 학생, 이번 분만 들어가야 하니깐 준비해요. 마스크 쓰고 캡 쓰고.

라고 하셨다. 아, 순간 울뻔했다. 가족분만인데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은총으로 분만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쁜 마음에 서둘로 캡과 마스크를 쓰고 분만실에 들어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NSVD!!

들어가서 수술실 가운을 입고 장갑을 낀 후 교수님이 지정한 곳에 섰다. 산모의 질 입구에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 무언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작은 것이 생명이라니... 산모는 계속 힘을 줬고 애는 잘 나오지 않았다. 교수님이 농담삼아 '애 머리가 큰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조금 더 분만이 쉽게 되기 위해 episiotomy를 하셨다. 자르고 조금 더 자르고 조금 더 자르자 애 머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멈췄다. 교수님이 '아, 얘가 고개를 딱 들면 바로 나올텐데'라고 하셨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애가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완전히 나왔고 순식간에 몸이 전부다 나왔다.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 아버지가 탯줄을 잘랐다. 아이는 순식간에 suction 등등등등의 처치를 받았다. 순식간에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드디어 왜 자식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정말 다리 밑에서 아이를 받았다. 마무리를 하는 교수님을 옆에서 도와드리는데 산모와 아이 아버지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아버지는 옆에 멀찍이 서서 다가오지도 못했고 (다가와도 되는데..) 어머니는 그냥 멍해보였다. 감동이 너무 크면 그냥 멍해지듯이...

분만을 하는 산모를 보면서 계속 어머니 생각이 났다. 분만실에 있는 많은 산모들이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고 자식을 낳았듯이 어머니도 나를 그런 고통 속에서 나으셨을 것이다. 출산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냐면 신체의 통증을 묘사할 때 정말 최고로 아플 때를 colicky pain(산통)이라고 한다. 절대로 참지 못할 정도의 고통 정도를 말이다. 아무래도 제왕절개가 산모한테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NSVD가 진짜 아이를 낳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그 고통과 함께 영원히 기억에 남겠지..

#4.
결국 산부인과의 목표는 다 이루었다. NSVD와 C-sec을 모두 봤으니. 과연 실습이 끝난 이후 내가 또 NSVD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궁금하다. 아마 오늘 내가 본 아이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분만을 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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