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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부인과 실습을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이 딱 두 개 있다. 바로 C-sec 하나와 분만 하나는 꼭 보자는 것이었다. 본1 때 해부한 카데바가 남자분이어서 여성 생식기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본2 때 산부인과를 공부했기에 정말 산부인과에 대한 이해도가 제로였다. 그래서 내가 그나마 관심있는 이 두 개는 꼭 보자는 다짐을 한 것이다. 그 중 하나인 C-sec을, 말로만 수백번을 들은 바로 그 제왕절개술을 2010년 9월 13일에 처음 봤다!
#2.
아침에 C-sec이 3개인 것을 확인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이미 한 개는 끝난 상태고 한 개는 (내가 좀 늦장부렸더니) 산모가 이미 수술실에 들어와 있었다. 교수님 이름과 소문만 들었지 어떻게 생긴 분인지를 몰랐기에 긴장 엄청 타면서 수술을 지켜봤다. 첫 수술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가뜩이나 오랜만에 수술실 들어와서 정신 없는데 교수님은 간호사가 분만실 간호사 안 불렀다고 성내시기까지 하셔서 (화내는 거 보고 그 분이 교수님인걸 알았다..;) 거의 카오스 상태로 지켜봤다.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묘사하면... 교수님이 배를 가로로 절개하신 후 피를 좀 닦아내고 또 절개 좀 하니깐 갑자기 애 머리가 쑥 나오고 그 머리를 잡고 당기니 갑자기 피로 둘러싸인 애 하나가 교수님 손에 매달려있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피와 함께 또 쓱 하고 태반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배를 닫았다.... 이게 전부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지켜봤던 것 같다. 첫 C-sec은 이렇게 그냥 '애가 쑥 하고 튀어나온 수술'로 기억에 남고 말았다.
마지막 C-sec은 나도 스크럽으로 참여하라고 교수님이 말하셨다. 1년차 선생님 손 씻을 때 같이 씻고 들어가라셨는데 수많은 여 선생님들 중에 누가 1년차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ㅠ 그냥 쭈뼛쭈뼛대고 있었더니 1년차 손 씻었는데 주니어는 뭐하고 있냐면서 불호령이시다. 또다시 카오스에 빠져서 손을 씻고 수술방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입는 수술복에 수술장갑이라 입고 끼는 데 고생을 좀 했다. 아, 노련하게 장갑 끼던 외과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어쨌건 이번엔 C-sec을 직접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수술은 4년차? 펠로우? 선생님이 진행했다. 과정은 (당연히) 앞 수술과 같았다. 두 번째 C-sec이라 지난번 수술 자국을 중심으로 양쪽을 째고 들어갔다. 나는 실수 안하는 거에만 주력하느라 전혀 뱃속을 보지 못했다. 어떤게 자궁이고 어떤게 난소고 이런 걸 확인했어야 되는데... 역시나 순식간에 자궁이 갈리고 애가 튀어나왔다. 교수님만큼의 노련함은 아니었지만 애는 잘 나왔다. 이번 아이는 출생할 때 나의 손도 좀 탔다는 생각에(아주 약간 만졌다-ㅁ-;ㅋ) 좀 남다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시 손에 엄청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placenta와 함께 엄청난 양의 피가 수술대로 쏟아진 것이었다. 외과 돌 때 '피 정도야' 하면서 웃어넘겼던 나였지만 손을 흥건하게 적실 정도의 피를 처음 보자 순간 역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쨌건 그 피는 주변의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노련하게 처리했다. 그 사이 나는 4년차? 펠로우?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처음으로 난소를 구경할 수 있었다. 항상 그림책에 나온 자궁과 난소, 나팔관을 상상했는데 역시 그림책은 그림책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수많은 수처와 타이를 거쳐 여느 수술과 마찬가지로 배를 닫았다.
C-sec은 첫 날 실습 이후론 전혀 보지 못했다. (사실 들어가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추석 직전이라는 나른함이 나를 게으르게 만들었던 것인가..
#3.
이제 남은 건 분만이다. 우리 병원에서 분만 보기가 쉽지 않다던데 과연 이틀 간의 분만실 실습에서 한 번이라도 분만을 볼 수 있을지 걱정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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