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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과 4주 실습 중 첫 2주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에서 실습을 합니다. 병원 소개글에 따르면 국내 정신과 전문 병원 중 대학병원 부설로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병원은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큰 길에서도 차로 5분은 들어가야 하는 곳에. 병원은 총 4층인데 2,3층이 병동이다. 2층은 노인병동과 특별병동이 있고 3층에는 일반 병동이 있다. 보통 입원환자는 정신분열병이나 조울증 환자가 많고 알콜 중독환자나 식이장애 환자들이 있기도 하다. 물론 노인병동에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분들도 있고.
#2.
학생들이 하는 일은 프로그램 참가, 산책 같이 하기 등등이 있지만 가장 재미있던(?) 것은 환자 차트보고 환자를 직접 만나보는 일이었다. 차트를 보면 정말 다양한 과거사를 가진 분들이 많다. 정신분열병의 경우엔 환청이나 망상이 대부분이고 조울증의 경우에는 들뜬 기분에 별의별 행동을 하셨다. 그러나 오늘 여기서 얘기하려는 것은 이런 재미있는(?) 케이스가 아니다.
식이장애 환자들의 차트를 읽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이냐하면 뚱뚱했다가 친구들의 '돼지'라는 놀림에 스트레스를 받고 식이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를 되짚어보면(물론 지금도 그러는 경우가 가끔 있긴 하지만) 뚱뚱한 친구들을 참 많이 놀렸던 것 같다. 요즘 8경기 연속홈런 때린 이대호를 이돼호로 부르는 것처럼 뚱뚱한 체형은 놀림의 대상이 되기 쉽기에. 그 친구들을 놀릴 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친구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것이었다.
식이장애 환자들은 겉보기에는 아주 멀쩡하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무척 말랐고 나이 어린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 있다. (이는 내가 본 환자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 식이장애 환자들을 봤을 때엔 그들의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많이 좋아진 환자들이 많아서 그랬다기보단 진짜로 겉보기엔 멀쩡하기에. 그러다가 실습 마지막 날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보았다.
회진 돌기 직전 간호사 선생님이 스테이션으로 프링글스 한 통을 가져왔다. 한 식이장애 환자가 다른 방에서 받은 과자를 들고 자기 방으로 가던 중 딱 걸린 것이다. 그 환자는 전날에도 과자를 몽땅 먹고 구토를 하다 들켜서 점수를 왕창 깎였다. 회진을 돌고 그 환자에게 가는데 그 환자가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회진도는 선생님께 거의 울듯한 목소리로 '식욕 없애주는 약 좀 센 걸로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계속 호소했다. 증상은 이러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에 생각나는 건 과자가 먹고 싶다는 것이다. 과자가 먹고 싶은 대신 밥은 먹고 싶지 않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저 과자과자과자만 외치다 과자를 몽땅 먹으면 살 찔 것 같다는 불안감에 못 이겨 바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한다. 그리고는 또다시 머리엔 과자 생각만... 얼마나 과자를 먹고 싶었으면 근처 대형마트의 과자를 몽땅 먹어버리고 죽었으면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환자를 눈앞에 두면 전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가 과자만을 찾는 본인의 모습이 비참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과자를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조절할 수 없는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자세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식이장애는 약물치료가 거의 안되는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까웠다. 약에 의존할 수 없고 본인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치료해야 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것은 그 환자가 병이 처음 생기게 된 계기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뚱뚱하다고 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원래 기질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래도 triggering factor는 바로 주변 사람들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주변 친구, 특히 여자에게 뚱뚱하다고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두길 바란다. 당신의 말 한 마디가 그녀의 나머지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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