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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가 바쁘기도 했고 포스팅이 귀찮아지기도 하면서 실습일지가 밀렸다. 6주간 간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생각들에 대해 간단히 써보자.
1. 외과를 돌면서 크게 세가지 방법의 수술을 봤다. 개복술과 복강경, 그리고 로봇수술이 그것이다. 수술들을 쭉 보면서 이 세가지 방법의 수술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은 수술법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만약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수술을 받는다면 어떤 수술을 권할까?' 라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각 수술의 장단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개복술의 장점은 무엇보다 빠른 수술시간, 그리고 집도의에게 활짝 열려있는 수술시야 정도가 있겠다. 수술부위를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더더욱.) 또한 두 손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옆에 있는 보조의들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집도의가 훨씬 편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점이라면 수술 후에 엄청나게 아프고 흉터가 남는다는 점, 그리고 회복시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점이 있다.
복강경은 일단 개복술보다 상처가 훨씬 적게 남고 통증도 덜하며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도 훨씬 짧다. 대신 3개 정도의 기계팔이 들어가서 집는 작업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의 난이도는 개복술보다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수술 시야도 옆에 있는 간호사나 보조의가 들고 있는 내시경(?) 같은 것을 통해 보기 때문에 집도의로써는 불편하다.
로봇 수술은 복강경보다 수술 후 입원 기간이 짧다고 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집도의가 직접 조종하기 때문에 시야 확보도 편리하고 arm의 움직임이 인간의 손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수술이 좀 더 쉬울 것 같다. 대신 수술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지고 가격이 다른 수술에 비해 훨씬 비싸다.
결론적으로 나의 추천은 복강경>개복술=로봇 정도겠다. 개복술이 옆에서 지켜보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최고지만(잘 보이니깐) 아무래도 흉터나 통증이 많이 남기 때문에 복강경을 선호. 로봇 수술은 일단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복강경과의 차이가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후순위로 밀렸다. 물론 이런 생각은 옆에서 수술을 몇 개 지켜본 학생의 입장이고 실제 집도하는 외과의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2. 신촌 유방외과의 포인트는 역시 학생발표라고 본다. 유방에 관한 해부학부터 시작해서 유방의 질환에 대해 모조리 외운 후 교수님들과 펠로우, 레지던트 선생님들 앞에서 혼자 30분 이상 떠들어야하는 시간... 산부인과 시험 볼 때에도 유방 부분은 비중이 적었기 때문에 대충 왕만 바르고 넘어갔었는데 유방외과를 돌면서 확실히 공부했다. 수요일 오후 발표였는데 월, 화, 수 오전까지 계속 그 공부만 했으니 분기말에도 이런 기세였다면 성적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렇게 발표를 하고 나니 유방에 대해선 자신만만해졌다. 웬만큼 교수님들이 학생한테 하는 질문은 방어가 되었으니깐...
그러나 발표를 하고 이제 5주쯤 된 현재 시점에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안 보고 줄줄줄 외웠었는데... 역시 long term memory로 안 가고 short term으로 외운 거였나; 종양내과 돌면서 유방암 치료 다시 외우는 나의 모습이 안타깝다.
3. 이식외과에서는 거의 매일 외래를 들어갔다. 거기에서 있었던 한두가지 에피소드다.
마침 6월 1일이었다.(다음날이 선거일) 내가 갔던 외래방의 교수님은 환자와의 라뽀(rapport)가 최강인 교수님이었다. 병동 환자들과의 친밀도는 물론, 외래 환자들의 자세한 사항(어디 사는 누구이고 가족은 어찌 되고 등등..)까지 알고 계시는 교수님. 물론 이식외과의 특성 상 외래 환자가 수년씩 다니니 그럴만도 하다 생각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환자들과 최강 라뽀를 형성하는 교수님이 너무 부러웠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두번째인가 세번째 환자가 들어왔다. 아마 직업이 교수인 것으로 추정되는 분인데 교수님이 환자분에게 교육감 누구 찍어야 되는지 물으셨다. 본인은 잘 모르겠으니 교수님이 좀 알려달라고 했다. 그 환자분은 웃으시면서 자기는 생각해 놓은 사람이 있지만 말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선거의 원칙 중 비밀 선거를 지키는 것이랄까, 아니면 선거법 위반을 피하려는 심성? 어쨌든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나가셨다. 다음 환자가 들어왔다. 부부였는데 남편이 진료를 받고 부인은 옆에 서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교수님이 같은 질문을 하셨다. 교육감 누구 뽑아야 하냐고. 아마 부부가 모두 교사이거나 남편은 교수, 부인은 교사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남편 분은 앞 환자분과 같이 잘 모르겠다고 교수님 원하시는 대로 뽑으시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가려는데 부인이 돌아서면서 한 마디 하셨다. '곽씨를 뽑으세요.' ........
같은 날이었다. 환자분이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걷는 것도 불편해하시고 자리에 앉자 마자 손을 계속 떠시는 게 파킨슨 씨 병 같았다. 아니면 다른 신경과의 운동 질환의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교수님이 약 처방을 끝내신 후 환자분께 신경과는 잘 다니고 있냐고 물으셨다. 약 처방 받은 거 잘 드시냐고.. 차트를 보니 파킨슨 씨 병이 있는 분. 환자분이 '잘 안 먹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증상이 심한 것을 보니 정말로 잘 안드시는 것 같았다. 교수님이 왜 안드시냐고 하니깐 (60대 중반 정도였던) 환자분이 한 대답이 내 마음을 후벼팠다. '사는 게 재미 없어서요.' 얼마나 사는 게 힘드셨으면 그런 생각을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인지 신장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장기가 안 좋아져서 이식 수술을 받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시고 1달이나 2달에 한 번씩 신촌까지 와서 약 처방 받아서 약 타가고 매일매일 먹어야 하는데 거기에 신경과 질환까지 겹치니...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신경과 약은 안 드시면서 이식 외과 약은 꼬박꼬박 드시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교수님 라뽀의 힘인가...
4. 소화기 내과에서 케이스 발표 때 있었던 일이다. 케이스 환자분이 70대 할머니셨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발표를 하다가 '~한 질환으로 입원하셨고 ~한 치료를 받으셨으며...' 이렇게 환자분을 존칭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어쩌면 극존칭(?)에 가까운 표현도 몇 개 나왔다.(수치는 ~하셨고 등등..) 그러나 교수님이 존칭으로 표현하지 말고 ~하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라고 주문을 하셨다. 순간 '왜?!'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올랐지만 바로 말투를 고쳐서 ~는 했고 ~했습니다. 는 표현을 썼다. 발표 준비를 대충 해가서 교수님께 엄청나게 털린 후에 발표를 마치고 다른 무엇보다 왜 환자분의 현재 질환을 표현할 때 존칭을 써서는 안되는 가에 대해서 너무나도 궁금했다. 의사는 주관적이면 안되니 객관성을 위해서? 아니면 모든 환자에 대해 똑같이 대하는 평등주의 때문에?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어쩌면 rationale가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냥 의사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관습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라면 그 이유가 합당하다면 그렇게 따르겠지만 존칭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후자라면 별로 따르고 싶지 않다. 나보다 50년 이상 더 산 분이 주체가 되는 것인데... 존칭을 생략하는 것이 그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나도 복잡한 우리말의 존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의사들 앞에서 대상으로 존재하는 환자에 대해 존칭을 써서는 안되니깐...? 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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