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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스물다섯째주~스물여섯째주> 신촌,강남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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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과 실습을 돌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마음만 먹으면 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만 다른 과는 대부분 의학적인 이야기를 나누어야하는 반면 정신과는 환자의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도 치료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냥 수다떨듯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우선 광주에서는 환자와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매우 쉬웠다. 폐쇄병동이라 환자는 항상 자신의 자리나 복도에 있고 내가 찾아가서 말을 걸기만 하면 되었다. 간혹 부정적으로 대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친절하게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셨다. 하루종일 병동에만 갇혀 있으려니 심심하고 말상대가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하고 환자분들도 심심하니 이것이 바로 누이좋고 매부좋고 아니겠는가? 그래서 거의 매일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정신과 환자들의 히스토리를 끄집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잠깐 병이 커져서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을 남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잡스런 얘기 하다가 그 쪽으로 좀 이끌어갈라치면 거부하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의사가 아니기에 그런 분들에 대고 '얘기하세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어차피 그들의 이야기는 다 차트에 있긴 하니깐... 어쨌든 그런 반응을 보이던 분들도 한 3일 정도 이야기하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자신이 어떻게 병원에 들어왔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물론 Schizo환자들은 무언가 disorganized speech삘 나게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환자와의 rapport가 형성되었다는 약간의 기쁨도 있었다.

강남에서 내가 맡은 환자는 한 할머니였다. 첫 날 회진에서 교수님도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인 할머니였다. 그냥 앉아서 아무 말씀도 안하고 계셨다. 이튿날 아침에 가보니 이제 말은 잘 하시는데 문제는 일본어가 80%,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가 20%였다는 것이다. 간혹 몇몇 숫자들은 들리는데 도대체 뭐라고 하시는지.. 게다가 연세가 많으셔서 발음도 좋지 않으셨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어의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할머니 말씀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할머니의 사고 진행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열심히 듣다가 '아, A란 이야기하시는구나..'하면 어느새 B이야기로 넘어가 버리시고. 그냥 옆에 계신 간병인 분과 열심히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할머니는 내가 가면 무척 좋아하셨다. 젊은 학생이 오니 손주 같으셨나..? 팔이 부러지셔서 정형외과 수술을 기다리고 있으셨는데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환자들은 의사가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를 원한다.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고 그러면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 실제로는 그러지를 못한다. 심지어 정신과 교수님들도 외래에서는 2~3분 만에 환자를 볼 정도이니. 신촌에서 실습돌 때의 이야기다.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비뇨기과 협진을 받으셨더랬다. 비뇨기과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이 회진 돌면서 할머니께 왜 다른 과 선생님들이 설명을 자세히 안해주는지 설명하셨다. 의사들 중에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세한 설명을 못해준다는 것이었다. 진실일 수도 있고 그냥 둘러대는 말일수도 있는데 어쨌든 6달 실습 돌면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할머니가 이해를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겐 담당 의사가 설명을 자세히 못해주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중요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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