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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실습 열한번째, 열두번째 주> 신촌 외과 상하부위장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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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과 첫 주다. 서양의학의 발전사를 보면 그 시초에 외과가 있었는데 드디어 그 외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체험하게 되었다. 외과를 돌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수술방의 모습이었다. 하얀거탑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만인의 로망이었던 외과의사, 그리고 그들이 수술하는 모습. 미드를 보면 뭔가 sterile한 느낌의 방에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 주변에서 수술을 하고 2층 같은 데에서 사람들이 observation하는 것 같앗는데(House에서..) 과연 우리나라도 그러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매우 컸다. 
 그러나 실제 수술방의 느낌은 나의 상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일단 observation room 따위는 없다. 개복수술을 보려면 발판을 놓고 집도의와 어시스턴트의 어깨 사이로 수술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하고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을 하면 그저 추운 수술실 내에서 오들오들 떨며 화면만 쳐다볼 뿐이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적당한 크기의 넓고 하얀 방에 가운데에 수술대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컴퓨터, 서랍장, 유리장 같은 것들이 있으며 수술과 관련된 수레(?) 같은 게 있는... 그저 평범한 모습이었다.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나, 아니면 나의 상상 속에서 너무 과장되게 창조된 것이었나....
 하지만 수술방의 모습이 나의 상상에 크게 못 미친다고 해서 외과의 모습이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병원의 주인이 내과냐 외과냐 하는 논란이 많지만 다른 메이저 중 산부인과, 소아과는 내과랑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외과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서양의학의 양대 축이 내과와 외과이니.
 어쨌든 나의 상상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술방 안에서 많은 외과의들이 기적을 창조하고 있었다. 가만히 두면 암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완치는 아니더라도 재발만 안한다면 수명대로 살 수 있게 만드는 기적. 외과의가 아니면 그 누구도 치료하기 어려운 것들을 몇 시간의 손놀림으로 치료하는 기적을 말이다.

2. 첫 주는 하부위장관 파트였다. 선배들에게 예과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바로 그 교수님 밑에서 실습을 돌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척 즐거웠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것만 빼면... 실습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 절정이었다. 일정을 보니 수술이 딱 한 개만 있어서 일찍 끝나면 무얼 하나 고민했었는데, 정오에 시작한 수술이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다. 무려 10시간.... 외과는 3D가 맞는 듯 하다.
 하부 위장관 파트의 환자는 대부분 대장암이나 직장암 환자이다. 즉 수술의 대부분은 대장을 잘라내는 것. 대장은 그나마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수술하기 편한데(물론 옆에서 관찰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의 입장에서) 직장은 암의 위치에 따라 난이도 변화가 엄청 심하다. 그래서인지 1주일 동안의 수술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수술은 모두 직장암 수술. LAR이라는 수술법을 보기만 하면 걱정이 앞서게 될 정도였다. 직장암 수술이 어려워지는 경우는 암이 항문에 가깝게 생긴 경우이다. 어디 생기든 접근하는 곳은 복부 쪽인데 암이 항문에 가까우면 좁은 골반을 비집고 들어가서 직장을 절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요일의 10시간짜리 수술이나 목요일의 엄청 힘들었던 수술 모두 좁은 pelvis에 암이 항문 가까이 생긴 경우엿다. 이런 조건에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이 되어 버리면....ㄷㄷ

3. 둘째 주는 상부위장관 파트였다. 우주에서 위암수술을 제일 잘 한다는 교수님 아래에서 실습을 돌았다. 명성은 익히 들었기에 도대체 어떻게 수술을 하는지 정말 궁금했다. 일단 이 분의 특징은 수술이 엄청 빠르다는 것이었다. 열고 닫는 시간을 제외하면 절대로 1시간 반을 넘지 않는 수술. 첫째 주에 꼼꼼하고 아주 느린(-_-) 수술만 보다가 처음 위암 수술을 보니 손이 너무 빨라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 복강경이나 로봇 수술은 절대로(?) 안하시고 무조건 개복수술만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했지만..
 교수님이 수술을 빠르게 하는 이유는 일단 수술 시간이 짧아야 환자에게 더 좋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1분이라도 더 짧으면 환자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속도만을 중요시하다보니 출혈의 위험이 매우 높았다. 교수님의 수술법 자체가 주요 혈관을 제외한 혈관은 '보비(?)'라고 부르는 전기소작기를 이용하여 지져버리는 것이 핵심이기에 이 혈관들의 지혈이 제대로 안 되었을 경우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 그래서 교수님은 계속 출혈 없는 수술을 강조하셨다. 수술이 끝나고 배를 닫을 때에도 어디서 피 나는 데가 없나 꼼꼼히 확인하라고 하시고.. 과연 어떤 것이 더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수술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더 좋을지, 아니면 출혈 위험을 확실히 줄여서 합병증의 확률을 낮추는 것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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