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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 호흡기 파트에서 딱히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은 없었다. 실습이 하루 반밖에 안 되었던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pneumonia, bronchiolitis, croup이었기 때문인 이유도 크다. 그 중에 한 명 기억나는 환자가 있는데 대충 중3쯤 되는 남환이었다. 1주일간의 cough를 주소로 내원했는데 일단 학교 다닐 때 기침 오래해서 폐렴이 의심되면 머리에 mycoplasma를 떠올려야하는데 이 환자가 딱 그거였다. 가슴사진을 찍어보니 left lower lobe이 아주 새하얗게 나온 게 전형적인... 첫날 볼 때엔 어느정도 기침만 심할 뿐 괜찮아 보였는데 며칠 있다 보니 기침이 엄청 심해지고 애가 힘들어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mycoplasma pneumonia를 봐서 이 케이스가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이 케이스가 머리에 오래 남게 된 것은 첫날 회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애가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안 해서 병을 키워가지고 왔네요.'라고 하셨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애가 기침 많이 하고 아픈데 (사춘기라) 어머니께 말을 안 드리고 버티다가 너무 심해서 못 참겠으니 어머니께 말해서 병원을 온 것 같다. 남자 중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어쩌면 여자도 포함될지도) 한 부류는 남자는 아파도 아픈 척해서는 안된다는 주의로 절대 아파도 말 안하는 부류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조금만 아파도 엄청난 증상을 호소하는 부류이다. 나는 일단 어느정도 아픈 거는 다 참지만 통증같은 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두번째 부류로 돌변하는 스타일이다. 약간 앞에서 언급한 케이스와 유사한 성격이랄까? (아마 그래서 기억에 잘 남는걸지도) 주변에 보면 조금만 아파도 병원 가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아파도 집에서 그냥 버티는 사람이 있다. 두 경우 다 안 좋은 것이다. 병원에 너무 자주가는 사람은 의료보험공단의 재정부담을 늘리기 때문에-_- 안 좋은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있는 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안 좋은 것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판단으로 병원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이 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 가정의학과를 만든 건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 호흡기 파트를 돌면서 ICU에 가서 소아 환자를 보는 시간이 있다. 3시반에 ICU B구역에서 펠로우 선생님을 만나서 강의를 듣기로 했는데 선생님이 외래가 늦게 끝나서 조금 늦으셨다. 그래서 그냥 멍 때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띵띵띵'하는 안내음과 함께 '코드 블루 ICU D구역 소아외과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이 들렸다. 병원에 있다보면 심심치않게 들리는 코드블루가 뜬 것이다. 코드블루면 환자가 심정지를 일으켜서 CPR을 요하는 상황. 항상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는데 마침 바로 같은 층에 코드블루가 떴다고 하니 궁금한 마음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가보니 ICU 한 방에 많은 선생님들이 모여있고 한 선생님은 CPR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들, 의사 선생님들 할 것 없이 관련된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조금 있으니 소아외과 레지던트와 소아과 레지던트들이 몰려왔다. 코드블루 때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배운적이 없기에-_- 잘은 모르겠지만 CPR도 하고 epi도 주고 그러는 것 같았다.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다들 불안해하는 마음으로 monitor만 쳐다보고 있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3분이 지나도 환자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지고 CPR하는 선생님도 지쳐갔다. 그러기를 수십초. 환자의 맥박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죽어가는 목숨 하나가 되살아난 것이다. 무언가 처음 보는 코드블루 상황에서 환자가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 (위의 상황에 이어서) 코드블루를 듣고 ICU D로 달려가는데 바로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 어떻게 해. xxx 맞나봐'하면서 울음을 흘리셨다. ICU에 가 보니 아주머니가 말씀하신 이름과 선생님들이 모여들어 CPR하던 환자의 이름이 같았다. 아마 어머니쯤 되려나. 환자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쯤 되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친구들은 밖에서 공부하고 수다떨고 뛰어놀고 있을텐데 홀로 적막한 병원에 ventilator달고 있는 딸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아이는 결국 그날 저녁에 사망했다.
- 감염 파트에는 김동수 교수님이 계신다. 학생들에게는 김동수=가와사키병으로 인식되어있는 분. 역시나 환자 중에는 가와사키 병 환자가 많았다. 가와사키 병은 5일 이상 38.5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면서 안구 충혈, 입술이나 혀가 빨개짐, 손발의 부종, 전신의 특이적 발진이나 BCG 접종 부위의 erythema, 목 부위의 림프절 종대 중 4가지 이상이 나타나면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이다. 보통 특별한 합병증 없이 나을 수 있지만 심장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심초음파를 꼭 찍으면서 추적관찰을 해야 한다. 혹시 주변에 이런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다면 당장 신촌세브란스 어린이병원 김동수 교수님 외래로 보내시길. 외래는 월,수,금 오전이고 당일 환자를 모두 받으신다-_-
p.s 늑대별님의 블로그를 오랜만에 보다가 생각난 게 있다. 의학퀴즈 내신 포스팅이었는데 댓글을 보면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대충 빈혈과 흑변을 본 환자를 진단하라였는데 댓글의 많은 수가 'GI에 consult. 고진선처 부탁드립니다.' 였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아주아주아주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멘트. 일단 잘 모르겠으면 해당 파트에 협진내면 끝.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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