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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실습 아홉째, 열번째 주> 강남 소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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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남 소아과는 실습보다는 강의 위주였다. 그래서 에피소드로 삼을 만한 게 그닥 많지는 않았다. 실습 중에 듣는 강의라 강의실에서보다는 더 내용도 와 닿고 소수 그룹 강의라 집중도 잘 되었지만 그래도 실습에서 강의의 비중만 너무 높은 것 같은 느낌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강남 소아과의 가장 큰 특징은 무한 대기였다. 오후 회진을 언제 돌지 모르니 전체 일정 끝나고 몇 시간이고 대기 타야 하는 것... 둘째 주엔 사람이 적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첫 주에는 작은 학생휴게실에 바글바글한 사람이 있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2. 첫 주에 오후 회진을 도는 데 응급실에 한 환자가 있다 해서 응급실에 갔다. 5살 정도 된 여자아이인데 입은 완전히 부르터서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나머지 얼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였고 온 몸에 홍역처럼 발진이 나 있는 상태였다. 일단 딱 보기에도 무언가 심각한 질환같은 삘. 머리 속에는 지난 알레르기 내과 때 본 Stevens-johnson syndrome이 먼저 떠올랐다. 항문 쪽 ulcer만 있으면 입과 함께 거의 유사한 모양새. 온 몸의 발진은 좀 맞지 않았지만... 선생님들도 진단을 바로 내리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4S니 SJS니 그냥 심한 홍역이니 하며 다양한 DDx가 오고 갔다. 아이는 울고 있지, 부모님들은 걱정하지, 선생님들은 뭔지 딱히 결론을 못 내리지...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일단 아이를 입원시키고 지켜보면서 진단을 내리기로 하고 회진을 마쳤다. 다음날 가보니 R/O으로 herpetic gingivostomatitis 진단이 나왔다. R/O SJS도 있었고. 피부과 선생님들이 보고는 거의 herpetic으로 결론 낸 듯한 분위기였다. herpes 바이러스에 의한 치은구강염과 전신피부증상이 같이 나타났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herpes는 그냥 약 먹으면서 지켜보는 게 답이니... 그냥 매일 dressing해주고 지켜보는 게 치료 계획으로 나왔다. 입 주위의 증상만 보면 엄청 심한 질병 같았으나 결론은 흔한 바이러스 감염. 증상만 가지고 너무 걱정하면 안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이 아이는 엄청 보챘다. 일단 회진 돌면서 가운 입은 사람이 병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울기 시작했다. 예쁘게 생긴 아이였는데....)
  3. 둘째 주에 소아 내분비 교수님 외래에 들어갔다. 소아 내분비=성장 클리닉 이라는 말처럼 환자 중에는 성장 문제로 교수님을 찾는 사람이 꽤 있었다. 환자를 보던 중에 아주 상반된 케이스가 두 명 연속으로 들어왔다. 우선 첫 번째 아이는 4학년 쯤 된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안 오고 아버지만 왔는데 아마 아이의 키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걱정인 듯 했다. 하지만 의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어머니의 키가 작기 때문에 아이의 키가 아주 크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고 또한 현재 뼈나이가 실제나이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의사의 예상대로 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예상 키가 작은 키는 아니었다. 교수님은 평균을 약간 넘는 162cm정도까지 클 거라고 예상했다. 아이 아버지는 바로 불만섞인 표정을 지으며 여기서 검사한 수치나 사진을 복사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 아마 다른 성장클리닉으로 찾아가실 듯한 분위기였다. 그 의사가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 않다면 어차피 답은 비슷비슷할텐데....(성장 호르몬 주사 요법이 1년에 수천만원이라고 한다. 정말 돈 있으면 잘 생겨지고 키도 커지고 공부도 잘할 수 있는 더러운 세상....) 두번째 환자는 초등학교 2학년 쯤 된 여자아이였다. 역시 아이는 안 오고 어머니만 왔는데 키와 몸무게를 보니 상위 95p를 훌쩍 넘는 수치를 보였다. 어머니는 아이가 또래에 비해 너무 크고 뚱뚱해서 걱정이었다. 교수님도 수치는 대부분 정상이지만 성조숙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 이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큰 거에 대한 걱정이 많아 보였다. /// 이 두 환자가 연속으로 들어오니깐 뭔가 웃음이 나왔다. 한 쪽에서는 작을까봐 걱정이고 한 쪽에서는 여자아이가 너무 클까봐 걱정이고. 그러나 두번째 경우는 어느정도 이해가 갔지만 첫번째 경우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아이의 예상키가 평균보다 조금 넘는 수준이면 딱 내 경우랑 유사한데... 나도 지금보다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180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몇천만원씩 써가면서 일부러 키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할 것이다. 만약 키가 너무 작을 것이라 예상된다면 돈을 써서 키를 키우는 게 이해가 간다. 키 번호로 초등학교 때부터 1번을 놓치지 않을 정도라면 말이다. 그러나 남들과 비슷한 키가 되고 또한 부모님도 키가 별로 크지 않으면서 왜 아이가 크기를 원하는 건지... 162~163이 작은 키라면 170까지 키우고 싶은 건가? 아마 아버지보다 커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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