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사이야기/[2017년~] 진료실에서

좌식생활과 혈압측정

반응형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 혈압을 재다 보면 혈압이 높은 분들이 꽤나 많다. 그들 중 몇몇은 아직 고혈압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이지만 대부분은 고혈압 약을 먹고 있는데도 혈압이 높게 측정된다. 그러면 나는 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약 드시는 데 가서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기를 1년이 지났다. 높은 혈압을 보였던 분이 다니던 병원에서 약조절 받고 정상혈압으로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약 조절을 받지 않았다. 그런 분들 대부분이 항상 하는 말이 ‘병원가서 재면 정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만 재면 꼭 높다고 한다’였다. 나는 이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 의사가 고혈압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 항상 혈압이 높게 나와서 꼭 한 번 내원하라고 1년간 얘기했던 분이 드디어 내원하였다. 마을회관에서 잰 혈압 기록은 2~3년간 계속 수축기 혈압 150 이상을 찍었던 분이었다. 그런데 와서 기계로 재보니 수축기 혈압이 120대가 나왔다. 이 분은 고혈압 진단 받은 적이 없어서 고혈압 약을 먹지 않는 분이었다. 이상해서 내가 들고 다니면서 재는 혈압계로 측정해보니 수축기 혈압 130대가 나왔다. 같은 혈압계로 쟀는데 수축기 혈압이 20정도 떨어진 것이다. 보통 의사 앞에 가면 긴장해서 혈압이 높게 나온다고 하는데 이 분은 거꾸로 병원에서 재면 혈압이 낮게 나왔다. 다른 이유로 병원 가서 혈압 재도 한번도 높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이상했다.


왜 그럴지 고민하다 문득 생각난 게 혈압을 재는 자세였다.혈압을 잴 때에는 5분 이상 편안한 자세로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서 안정을 취한 후 혈압을 재게 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항상 의자에 앉아서 혈압을 잰다. 100% 원칙대로 재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의자에 앉기는 한다. 하지만 마을회관에는 의자가 없다. 적어도 내가 방문하는 10여군데 마을회관은 모두 좌식생활을 하게 되어 있다. 그냥 땅바닥에 앉아서 티비보고 얘기하고 그림놀이한다. 그러다 밥시간 되면 상놓고 밥 먹는다. 


내가 마을 회관에 방문해서 혈압잴 때도 그냥 상 놓고 바닥에 앉아서 잰다. 혈압 측정 시 유의사항 중 다른 것들은 대부분 지킨다. 등을 등받이에 기대고(=다들 벽에 기대고 앉아 계심)팔을 상 위에 올려놓고 커프 아래에는 얇은 옷만 입게 한다. 측정 시에는 말도 못하게 한다. 그런데 딱 한가지, 의자가 아니라 땅바닥에 앉아서 잰다.


혹시 의자에 앉아서 잴 때와 바닥에 앉아서 잴 때 혈압 차이가 실제로 나는지 연구한 논문이 있는지 찾아봤다. 그런데 없어보였다. 대부분 의자에 앉았을 때와 서있을 때의 혈압 차이는 연구했어도 바닥에 앉았을 때와 비교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바닥에 앉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구미권이 연구의 대부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좌식생활은 한국인에게는 편하지만 단점이 무척이나 많다. 특히 무릎과 허리에 엄청나게 안좋다. 당장 의자에서 일어날 때와 바닥에서 일어날 때 몸의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의 힘으로 쓰는지 직접 실험해보면 알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입식생활을 권하지만 평생 좌식생활을 해온 노인들에게 갑자기 입식생활을 하라고 하면 부담일 것이다. 나도 얼마 전부터 환자들에게 입식생활을 권유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당장 다음달 마을 순회 진료부터 의자에 앉아서 책상에 팔 놓은 상태로 환자들의 혈압을 측정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의자와 책상이 1개라도 있는 마을회관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조금씩 바꿔봐야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