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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세습 중산층 사회 - 조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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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주변에서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보기만 하지 거기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의 패턴을 찾는다. 이 책은 조귀동이 찾은 2019년의 패턴이다.

나는 중상류층이다. 용돈을 받지 않고 학교 생활을 보냈지만 집안이 금전 문제로 어려웠던 적은 없다.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녔다. 이후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며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직업을 떠나서 내 삶 자체가 중상류층의 삶이었다.

내가 중상류층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낀 곳은 인터넷 게시판이었다. 최근 부동산 문제로 시끌시끌했는데 게시판은 개인의 정치성향을 떠나 두 부류로 나뉘었다. 강남 3구에 입성하고 싶은 사람과 입성할 꿈조차 못 꾸는 사람. 나처럼 강남 3구에 입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15억 이상 주택담보대출 제한을 '사다리 걷어차기'라면서 반발했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 제도를 그렇게 실감하지 못했다.

10대 명문대(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스텍, 카이스트, 성균관대, 한양대, 서강대, 중앙대, 경희대) 출신이면 상위 10%의 '번듯한 일자리'를 갖게 될 확률이 높고 그 '일자리' 덕분에 남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게 된다. 실제로 강남 3구의 아파트 가격은 상위 10%쯤 되기 때문에 강남 3구에 입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 상위 10%의 '번듯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주요 담론은 이 상위 10%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최서원 문제, 조국 문제 등등 많은 사회적 이슈들은 다 이 상위 10%를 대상으로 한 문제들이다. 교육 역시 그러하다. 학교에서도 상위 10%의 진학 문제에만 신경쓸 뿐 나머지 90%는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는다. 각종 정책들도 이 10%를 타겟으로 진행된다. 나머지 90% 역시 정책의 수혜를 받지만 가장 목소리가 큰 것은 이 10%이다. 많은 드라마에서 그리는 '직장인'의 모습이 상위 10% 대기업 직원인 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상위 10%만을 위한 사회인지 알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제 이 상위 10%가 '세습된다'는 것이다. 30~40년 전만 해도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목소리 큰 상위 10%가 자식들에게 본인들의 기득권을 넘겨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 시작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아이가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이 1차 목표이다. 만약 아이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유학을 보낸다. 어떻게든 스펙을 좋게 만들어서 대기업에 보내는 것이 2차 목표이다.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만으로 임금 격차가 발생하고 이는 자산 격차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자산 격차는 다시 계급 격차로 이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 20~30대를 이루고 있는 80~90년대생들이다. 그들은 부모들이 그들을 상위 10%로 만들었던 과정을 보고 자랐다. 그리고 그 비법을 본인들의 자녀들에게 다시 물려주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최근 불고 있는 영어유치원 열풍이다.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에게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교육비를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상위 10%일 것이다. 그들은 유치원 때부터 자녀들의 스펙 격차를 벌리려 하는 것이다.


인적자본정책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종합연구 (2014) https://www.kdi.re.kr/research/subjects_view.jsp?pub_no=14159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자료이다. 1900년대 생과 그 자녀인 1930년대 생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생과 그 자녀인 1960년대생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별로 대물림되지 않았다. 그러다 1960년대생과 그 자녀인 1990년대생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시 대물림되고 있다. 즉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던 유일한 세대가 바로 1960년대 생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개천에서 난 용이 될 수 있었던 방법이 바로 '교육'이었다는 점이다. 70년대 후반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많은 고급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수가 한정적이어서 인력 공급에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80년대 초반 대학 정원을 늘렸고 그 덕분에 많은 60년대 생들이 '4년제 대학생'이 될 수 있었다. 졸업 후 그들은 인력 공급 부족이라는 긍정적인 시장 상황 덕분에 쉽게 대기업에 취업했다. 이후 IMF로 상사들이 대부분 명예퇴직 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그들이 채우면서 지금까지 상위 10%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즉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한 덕분에 50대까지 쭉 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집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중산층 세습의 수단이 교육이었던 만큼 해결책 역시 교육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육의 기회'이다. 상위 10%만이 받는 각종 교육을 나머지 90%는 누리지 못한다. 모두가 받는 교육인 공교육에 정부가 더 신경써야 하는 이유이다. 당장 입시 결과, 학부모들의 반발(반발하는 학부모 중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은 당연히 상위 10%일 것이다.)을 신경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나머지 90%가 소외받지 않는 교육제도, 입시제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두 당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60대 건물주의 정당'과 '50대 부장님의 정당'이라고. 이들이 본인들의 정체성을 버리고 90%를 포용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디선가 혜성처럼 새로운 정당이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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