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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갈등도시 - 김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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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래도 두 권(《서울선언》과 《갈등도시》)을 연속으로 읽다보니 두 권을 비교하게 된다.

《서울선언》은 뭔가 블로그 글들을 쭉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막상 읽을 때는 못 느꼈는데  《갈등도시》를 읽다보니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저자가 책을 쓰기 전까지 걸어다니면서 느낀 것들, 살면서 느낀 것들을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나름 주제는 있었지만 중구난방이었다. 글과 사진의 배치도 《갈등도시》를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조금 엉망이었다.

그에 비해《갈등도시》는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었다. 테마가 있고 그에 맞춰서 글을 체계적으로 써간 느낌이었다. 저자 뿐만 아니라 편집자도 《서울선언》이후 피드백이 있었는지 책을 더 깔끔하게 편집했다. 글 내용도 중요하지만 편집도 얼마나 독서의 용이성에 도움을 주는지 제대로 느꼈다.


.#2.

《서울선언》과 《갈등도시》의 특징은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을 다룬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의문이 들거나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구글에 검색해본다. 보통 검색해보면 그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신문기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두 책을 읽으면서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관련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첫 페이지에는 무조건 책이 나왔다.

덕분에 좋은 글들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방동에 있던 법덕온천에 대해 찾아본 것이었다. 법덕온천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찾기 힘들었고 덕분에 6.25 전쟁에 참전한 한 인물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난 이 땅의 누구든 본인의 일대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본인의 일대기를 남겨준 분이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을 다룬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이 책에서 다룬 내용에 관심있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과 같다. 내가 이 책에서 읽으면서 신기했던 내용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해줬는데 거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저자는 친구와 함께 답사를 다녔다고 했는데 저자나 친구 모두 서로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3.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다. 1985년 11월 11일 자 경향신문 기사에 나온 구절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봉천, 신림동 일대가 쾌적한 주거 단지로 바뀌고 있다. 이 일대의 구릉지 곳곳에 자리한 불량주택 밀집 지역이 재개발 사업을 통해 말끔한 아파트, 연립 주택 단지로 정비되는데다 도로, 공원 등 공공 기반 시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들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면 이 일대는 현대식 고층 아파트와 연립, 단독 주택가로 바뀌고 주거 환경과 가로 경관도 크게 개선돼 중산층 주거 지역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밑줄은 내가)

이 기사는 35년 전 기사인데 똑같은 기사를 2020년에 써도 이질감이 전혀 없다. 기존 불량주택을 밀어버리고 들어온 새로운 주택이 35년 후에는 다시 불량 주택이 되어 밀릴 위기에 놓여있다.

35년 전 입주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남아있다면 기존에 살던 사람들을 철거민으로 만들며 내쫓았던 사람들이 35년 후 본인 스스로가 철거민이 될 위기에 놓인 꼴이 된다. 이런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4.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도 있다. 이 책은 어쩌면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또는 뿌리깊은나무의 《한국의 발견》과 같은 위상을 지니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후대의 독자나 연구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레퍼런스로 삼아 글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의 사실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교차 검증이 이루어졌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서울선언》에서 '지역 주민들의 얘기를 들으니 본인이 갖고 있는 정보와 달라서 오히려 혼동을 주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얘기도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지역을 답사하면서 지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 책이 조금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그런 점이 추가되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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