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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유럽

[19] 말라가로 복귀, 그리고 한국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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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에서 말라가로 가는 길에는 안달루시아의 유명 휴양지들이 많다. 돌아가는 길에 그 중 한 해변을 감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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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Fuengirola 해변. 간단히 아점도 때우고 말라가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해변에서의 시간도 끝내고, 말라가로 돌아가서 우선 렌트한 차를 반납했다. 그리고는 예약한 오스딸로 갔다. 처음 말라가에 있을 때 묵었던 곳. 하지만 그곳에 가니 내 예약은 없었다. 두 번으로 나눠서 예약한 것이 그쪽의 오류로 없어진 것. 오스딸 주인 할머니가 미안했는지 전화를 하나 넣더니 숙소를 추천해줬다. 라 리네아에서의 호텔 덕분에 숙소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 있었기에 일단 추천받은 숙소말고 호텔을 알아봤다. 하지만 말라가는 비싼 물가답게 저렴한 호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개받은 숙소로 갔는데….

대.실.망.

돈을 지불하고 방에 들어가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 불은 켜지지 않고 침대는 매우 낡았고 화장실은 70년대를 연상시켰다. 아주아주 오래된 느낌에 현재 자는 사람도 거의 없어보이는 곳이었다. 방에 앉아 여기는 그냥 두고 다른 곳을 알아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으나 그냥 최대한 늦게 들어와서 아침 일찍 나가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그냥 머물기로 했다. 스페인에서 내린 최악의 결정이었다.

일단 숙소를 나온 후 나의 목적지는 말라구에타 해변. 언젠가부터 해변에 목말라있었다. 물에 들어가 놀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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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의 서 있는 사람이 뭔가 늠름한 느낌이다.

해변에 도착한 후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다를 보며, 그리고 해변에서 노는 사람들을 보며.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해변을 계속 갈망했던 것일까. 사진을 찍고는 싶었지만 왠지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참았다. 그냥 구경만 했다. 사람들을. 그리고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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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조금씩 조금씩 지기 시작했다. 밤 늦게 플라멩고 공연을 예약해 두었기에 그 전까지 시간이 많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즐겁게 놀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시끄럽고 재밌게 놀던 독일 단체여행객들도 떠났다. 경찰에게 무언가 걸려서 계속 얘기하던 일가족도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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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짐을 쌀 때가 되었다. 북적이던 해변이 어느새 한산해졌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의 선탠은 무의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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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한 마리 쌩~ 하고 지나간다. 모두가 떠나는 자리에 한 일행만 여전히 바다를 보며 앉아 있다. 아무리 오래 봐도 질리지 않나보다.

플라멩고 공연장을 찾아 갔다. 말라구에타 해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시간도 넉넉했다. 공연장의 이름은 Kel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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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공연 약 30여분 전. 덩치 큰 사람이 나를 맞았다. 그리고는 자리로 안내했다. 작은 공간의 전면에 무대가 있고 동그란 테이블들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간단히 타파스와 와인을 즐기며 플라멩고를 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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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조용히 앉아서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하나둘씩 자리가 채워졌다. 부부, 연인, 친구들이 플라멩고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잠시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공연장을 나갔다. 밖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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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순간 ‘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가서 제일 만나기 싫은 top3에 드는 것이 중국인 관광객. 그들은 들어올 때부터 시끄러웠다. (편견이 아니다. 정말로 시끄러웠다.) 자리에 앉더니 가이드가 공연 담당자와 얘기를 나눴다. 잠시 후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국수 요리가 배달되어 왔다. 중국어 소리는 더욱 커졌고 거기에 밥먹는 소리가 추가되었다.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중국인 하나가 내게 물었다. 대충 ‘중국인이세요?’라는 질문. (중국어로 말했다.) 나는 바로 no.라고 대답했다. 동양인처럼 생겨서 혹시나 했나 보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과는 다른 민족 사람들이라고. 같이 묶이는 것은 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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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무대를 두고 반대쪽에도 중국인들이 앉았다. 이것이 대참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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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공연자들이 들어왔다. 가장 먼쪽에 퍼커션하는 사람, 그리고 플라멩고 배우 둘, 그리고 가까운 쪽에 기타리스트가 앉았다. 이게 내가 공연 중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더 찍고 싶었지만…

이 사진을 찍자 마자 갑자기 플래시가 터졌다. 바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카메라에서. 카메라가 배우를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내 얼굴에 대고 플래시가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플래시가 터지자 곧 다른 곳에서도 플래시가 터졌다. 공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절정의 장면에 이르면 플래시는 더욱 자주 터졌다. 공연자들조차 플래시가 터지면 움찔거렸다. 나는 조용히 내 카메라를 집어 넣었다. 공연중에 사진을 찍는 것도 예의가 아닌데 플래시라니. 플래시를 터뜨린 것은 중국인 관광객 뿐만이 아니었다. 유럽 관광객도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공연장에서의 기본 예의는 어디갔을까?

공연은 너무나도 좋았다. 배우들, 연주자들, 모두가 최고였다. 하지만 다른 관람객 때문에 공연을 온전히 관람하기 어려웠다. 공연 내내 정말 너무나도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우리네 부모님들도 여행가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말도 안 통하는데 괜한 부스럼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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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에는 이곳에서 술 한 잔 했다. 정말 너무나도 좋은 곳이다. 말라가에 가는 사람들은 이곳을 반드시 가길 바란다. 이름은 La Tranca. 스페인 전통 노래가 계속 나오면서 주인과 손님이 하나되어 그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끊이지를 않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냥 말라가 최고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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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간다. La Manquita와도 이제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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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흰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한 일행이 길을 지나간다. 생각해보니 Friday night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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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숙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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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내 방이다. 내가 여행을 한 이후 최악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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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여건은 참 좋다. 방 바로 앞에 말라가에서 가장 큰 도로가 있다. 문제는 창문이 방음이 안된다는 것.

1시가 거의 다 되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3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깼다. 몸이 왠지 간지러웠다. 다리가 특히.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베드버그’ 너무 피곤했기에 그냥 잘까 했다. 하지만 점점 더 가려워졌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숙소에 대한 불만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도한 불만, 거기에 베드버그로 추정되는 것에 물리기까지 하자 더이상 참지 못했다. 아침 9시 기차였는데 그냥 기차역에 가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그자리에서 바로 짐싸서 숙소를 나왔다. 씻지도 않았다. 그냥 모자만 눌러썼다. 앞으로 30시간 이상 씻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서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기차역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갔다. 우선 앉을 곳이 없었다. 짐이 있었기에 마음놓고 잘 수도 없었다. 모기도 잇었다. 숙소에서 베드버그에 물린 것보다 기차역에서 모기에게 물린 것이 더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졸다깨다를 반복했다. 기차역에서 보낸 5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아침 9시는 결국 왔고, 기차에 탔다.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씻고 싶었다. 하지만 씻을 곳이 없었다. 공항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에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가서 티켓을 받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씻을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있기는 했다. 30유로인가를 내고 쓸 수 있었다. 그렇게 급하지는 않았다. 결국 씻는 것은 집에 돌아와서야 할 수 있었다.

토요일 스페인 공항에는 문을 연 음식점이 없었다.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공항에서의 식사만 바라보고 왔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급한대로 면세점에서 과자를 사 먹었다. 졸립고 배고프고 제대로 씻지 못해 꾀죄죄하고. 거지가 따로 없었다. 나의 끼니는 결국 몇 시간 후 기내식으로 해결했다.

---------------마무리--------------------

정말 잊지 못할 여행이다. 처음으로 혼자 한 유럽여행. 그리고 처음 한 유럽 렌트카. 페냐봉에서 죽을 뻔한 일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입과 눈이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마지막 날만 제외하곤. 다음 여행이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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