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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7년~] 마취

분만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몇가지 궁금증들을 의학적으로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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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임신, 출산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니 산부인과 의사들에 대한 불만글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은 분만 과정에서의 불만이었다. 분만3대 굴욕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모, 관장, 내진'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또한 회음부 절개술에 대한 공포 및 후기도 보았다.

그래서 이번에 분만과정에 대한 글을 쓴다. 내가 궁금했던 몇가지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해보고 답을 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0. 들어가기에 앞서

글을 시작하기 전에 꼭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분야는 나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분만 과정은 전적으로 산모 및 보호자가 담당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이 글은 정보가 너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견해도 있다'는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다.

 

이 글은 2008년 미국 산부인과 학회지에 실린 리뷰저널(Berghella, et. al. Evidence-based labor and delivery management,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 Volume 199 , Issue 5 , 445 - 454)을 참고해서 작성한다.

 

1. 자연주의 출산???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것이 있다. 의료진의 개입 없이 조산사의 도움만 받고 아이를 낳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자연주의 출산'을 선호하는 인터넷 기사들이 많다. 산모를 더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 추천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분만실을 무서워하는 많은 산모들은 이 '자연주의 출산'을 한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과연 연구 결과는 어떠할까?

논문에서는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항목이 없다. 대신 Home birth, Home-like birth, Midwive-led labor 라는 항목이 있다. 각각 집에서 출산, 집과 같은 환경에서 출산, 조산사의 도움으로 출산 이라고 번역하면 될 것이다.

우선 Home birth는 의료진이 아예 없기 때문에 연구된 바가 없다.

Home-like birth에서는 진통제의 사용이 더 적었고 제왕절개 빈도가 줄었다. 산모의 만족도도 높았고 출산 후 수유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또한 회음부 절개술의 빈도도 줄었다. 그러나 분만 과정에서의 사망률이 87% 더 높았고 아무 문제 없던 산모 중 50%는 분만 과정에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조산사의 도움을 받는 출산에서는 제왕절개 빈도, 신생아 사망률이 산부인과 의사가 도와주는 출산에서와 차이가 없다. 조산사와 아이를 낳던 산모 중 40% 이상이 분만 과정에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논문에서는 Home-like birth는 하지 말 것을 추천하였고(recommendation D) 조산사와 함께 하는 것은 추천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았다. (recommendation C).

자연주의 출산은 Home-like birth와 midwive-led labor 의 중간 정도 될 듯하다.

 

2. 관장 꼭 해야 하나??

출산 후기들을 읽다 보니 관장에 대해 얘기하는 산모들이 꽤 있었다. 분만 과정에서 힘을 주다 보면 변이 같이 나오고 이것이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이런 관장, 꼭 해야하는 것일까?

분만 1기에 관장을 받은 산모와 관장을 받지 않은 산모를 비교했을 때 진통 기간, 산모와 신생아의 경과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분만 후 산모 감염확률, 산모의 항생제 사용은 감소하였다. 신생아가 감기에 걸리는 경우도 감소하였고 신생아 항생제 사용 역시 감소하였다. 하지만 관장을 안한 산모에서도 감염되는 경우가 3% 미만이다. 이 논문에서는 관장을 대부분 산모가 불편하기 때문에 분만 과정에서 안하는 것을 추천했다.

 

3. 제모 꼭 해야 하나??

수술 전 제모에 대한 얘기는 분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최근 다른 수술에서도 제모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감염을 줄이기 위해 제모를 하는데 제모과정 자체가 감염의 위험성을 올린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회음부 제모는 그 자체로 다양한 합병증(발적, 통증, 불편함, 농양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을 추천했다. (recommendation D)

 

4. 분만실에서 걸어다녀도 되나??

분만실에서 산모를 주로 눕혀놓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연주의 출산을 추천하면서 자유롭게 걸어다녔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못 걷게 하는 병원들이 있나보다.

이 논문에서는 분만실에서 못 걷게한 산모들과 자유롭게 걷게한 산모들에서 분만 1기의 기간, 옥시토신 사용, 신생아 경과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분만실에서 자유롭게 걸어다녀도 된다고 했다. (recommendation C)

 

5. 둘라(Doula)??

논문에서 점검한 항목 중 Doula라는 것이 있었다. 생소한 표현이라 찾아보니 출산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아마 '자연주의 출산'을 얘기하는 곳에서는 이런 '둘라'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둘라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정신적 지지 역할을 해주고 산모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병원 직원보다는 외부에서 데려오는 것이 좋고 분만 전에 미리 정해서 산모 및 가족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 이 둘라의 존재 만으로 진통제 사용량이 감소하고 자연분만의 빈도가 올라가며 산모의 만족도도 올라간다. (Recommendation A)

둘라를 쓸 수 없는 상황이면 가족이나 친구가 옆을 지키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6. 내진 꼭 해야 하나??

산모들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진이다. 이유는 부끄럽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학 교과서에는 2시간 마다 내진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이가 얼마나 내려왔는지, 이상징후는 없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내진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한 연구 결과가 없기 때문에 결론내릴 수 없다고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내진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우선은 교과서를 따라 2시간마다 내진은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것으로 해둬야할 듯하다.

 

7. 회음부 절개 꼭 해야 하나??

회음부 절개 역시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것이다. 자연분만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아이가 나오기만 하면 통증이 없는 것인데 회음부 절개술을 하면 출산 후에도 통증이 있고 거기에 통증 때문에 변을 잘 못봐서 변비가 생기기도 한다.

이 논문에서는 일상적으로 회음부 절개술을 한 그룹과 제한적으로 시행한 그룹을 비교하였다. 일상적으로 시행한 그룹에서 절개 및 봉합 관련 합병증이 증가하였고 출산 후 성관계 시 통증이 증가하였다. 또한 요실금, 변실금의 발생 비율은 비슷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일상적인 회음부 절개술을 하지 않을 것을 추천하였다.

의과대학 학생 때 회음부 절개술을 하는 이유는 출산 과정에서 회음부가 너무 많이 찢어져서 항문조임근 등 주변 조직을 손상시키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지난 30여년 간 전세계적으로 회음부 절개술의 빈도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여러 논문에서도 일상적인 회음부 절개술이 항문조임근이나 직장 손상을 더 많이 유발한다고 하였다. 또한 회음부 절개술 자체가 주변 장기에 손상을 주고 초산에서 회음부 절개술을 했을 경우 2번째나 3번째 출산에서 더 큰 손상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산부인과 교과서 (Williams 24판)에서는 특별한 경우(어깨가 걸렸다거나 아이가 엉덩이를 아래로 한 자세를 했을 경우 등등)를 제외하고는 회음부 절개술을 시행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2017.5.24 추가)

산부인과 친구가 동양인은 골반이 작기 때문에 회음부 절개술을 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주어서 찾아보았다. 아시아인에서 회음부 절개술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 2016년 동국대 일산병원 박수현, 권하얀 교수가 쓴 논문에 따르면 회음부 절개술을 하는 것이 심한 회음부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DOI: 10.1080/14767058.2016.1224833) 2006년 일본에서 나온 논문(DOI: 10.1007/s00404-006-0168-5 )역시 (특히 초산의 경우) 회음부 절개술을 하는 것이 심한 회음부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이 정도로 알아두는 게 좋을 듯하다.

 

8. 그 외에 분만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 (Recommendation A)

1) 분만 중에는 서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2) 34주부터 아몬드 오일을 이용하여 하루 5~10분 정도 회음부 마사지를 하는 것이 분만 과정에서 회음부 손상을 줄일 수 있다.

 

 

0. 글을 마치며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글은 산부인과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교과서와 논문 몇 개 끄적이면서 쓴 글이므로 산모와 보호자들이 이 글만 읽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의학서적 및 논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정도이므로 꼭!! 담당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 후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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