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사이에서도 AI는 핫한 이슈이다. IBM 왓슨을 도입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의사 소견보다 왓슨 소견을 더 선택했다는 기사 이후 의사들의 술자리 주제 중 AI는 거의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의사들은 각자 자기 전공 분야가 AI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주판을 두드리고 있다. 주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과연 AI가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도 오늘 같은 질문을 해본다.
심장수술, 장기이식수술 같은 복잡한 수술이 아닌 간단한 수술(예를 들면 갑상선이나 유방 수술)의 전신마취를 AI가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부위마취는 이 글에서 고려하지 않겠다.)
전신 마취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진다. 1) 마취 유도, 2) 마취 유지, 3)각성 이 그것이다. 각각 단계별로 알아본다.
1) 마취 유도
마취 유도는 수면 유도, 근이완제 주입, 기관삽관의 과정을 거친다. 이 중 수면 유도, 근이완제 주입 과정은 AI로 충분히 가능하다. 연령과 키, 체중에 따른 약 용량을 결정하는 것은 어쩌면 AI가 더 정확하게 필요한 용량만을 주입할 수 있다. 만약 환자가 AI가 예상한 용량에 수면유도가 되지 않았다면 AI를 보조하는 인력이 그것을 AI에게 인식시켜주어 추가 용량을 주입할 수 있다. (AI가 의사를 대체해도 마취할 때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술실의 약 주입 설비와 환자의 수액 라인을 연결시켜줄 사람은 있어야할 것이다.)
문제는 기관삽관이다. 사람마다 입부터 기도까지의 길이 다 조금씩 다른데, 과연 이것을 AI가 시행할 수 있을지가 문제이다. 현재까지 AI는 결정을 내리는(Decision-making) 역할은 해도 어떤 술기(Procedure)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AI의 한계인지 아니면 추후 기술 개발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들이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로봇을 이용한 기관 삽관에 대한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나는 로봇이 직접 기관 삽관을 시도할 것을 기대하고 동영상을 봤는데, 로봇 수술과 마찬가지로 로봇이 기관 삽관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기관 삽관을 시도하는 영상이었다. 아직까지 기계가 사람의 술기를 대체하는 기술은 없는 듯하다.
2) 마취 유지
마취 유지는 수술 동안 환자가 깨지 않도록 마취 약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이미 AI가 역할을 하고 있다.
존슨앤존슨은 2013년 Sedasys라고 하는 마취기계를 출시했다. 이 기계는 주로 수면 내시경을 받는 환자의 마취 유지를 돕고 활력징후를 체크하면서 마취약 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관련 기사) 하지만 현재 많은 의료진의 반대로 이 기계가 큰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만약 이 기계가 보편화된다면 간단한 수술의 경우 마취 유지 시 기계만으로도 충분한 마취가 가능하다. 응급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안정적인 활력징후를 보이기 때문이다.
3) 마취 각성
마취 각성은 수술 종료 후 마취약제를 다 끊고 환자의 의식 회복을 확인 후 삽관했던 튜브를 제거하는(=발관) 과정을 포함한다.
집도의가 수술의 종료를 알리면 마취 약제를 끊는데, 이 과정은 AI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다. 문제는 의식 상태의 회복 여부 확인 및 발관 과정이다. 이 과정은 마취과 수련을 받는 의사들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전문의라 하더라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발관 후 환자가 무호흡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마취과 의사들이 근이완 상태의 충분한 회복, 의식의 회복 등 다양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확실한 기준은 없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마취과 의사들은 본인의 경험에 따라 발관 시기를 결정한다.
알파고가 기보를 공부했든 수많은 사례를 모으면 AI도 발관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나름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례를 모으는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사례를 모을 수 없을 것이다.
** 결론 **
간단한 수술 마취만 하더라도 마취 유도 및 각성 과정에서 AI가 과연 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 이 의심의 중심에는 기관 삽관 및 발관이 있다. 즉, 기관삽관을 하지 않으면 마취과 의사의 역할을 AI가 대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대한민국 의원 급에서는 마취과 의사 없이 수많은 수술들이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기관삽관 없이 진행된다. 오히려 이런 수술에서는 마취 기계를 통한 마취가 환자의 안전을 조금 더 보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가 봤을 때 마취과 전문의 없는 수면 마취는 항상 위험하다. 마취과 의사가 있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취 전, 마취 중, 마취 후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 때문이다. AI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3년 Sedasys가 출시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대한민국 마취과 의사들은 이 기계의 국내 도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에서는 수면내시경할 경우 마취과 의사에게 천불 정도를 낸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면내시경 시 마취과 의사에게 5만원 정도를 낸다. 기계를 쓰는 것보다 사람을 쓰는 것이 더 저렴하기에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무언가 씁쓸하면서도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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