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한식의 품격 - 이용재

반응형

추천사에 이 책의 저자는 ‘당대 음식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나는 음식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책의 저자는 현재 가장 욕 많이 먹는 음식평론가라는 것은 안다. 그의 블로그(bluexmas.com)에 가면 그를 욕하는 댓글이 엄청 많기 때문이다.


그가 욕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음식점에 대해 비판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여기는 이게 문제고 저기는 저게 문제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욕을 먹는다.


그는 전작 <외식의 품격>에서 대한민국 외식 문화에 대해 비판했다. 외식 문화 중 특히 서양 음식(=프랑스 음식?)을 다루는 음식점들 위주로 비판했다. 이번에는 그가 더 용감한 책을 냈다. ‘한식’을 비판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저자는 한식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식에 관심이 거의 없고 나 스스로 한식을 요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로 파스타, 스테이크 위주로만 요리하기에 저자의 전작을 읽으면서는 조금이나마 책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내용의 대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 스스로 해본 적이 없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요리들에 대해 비평을 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다. 아마 많은 요리를 해봤을 것이고 직접 먹어봤을 것이다. 한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이 정도 두께(500쪽)의 책은 쓸 수 없다.


1부에서 저자는 다섯가지 맛(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에 대해 다루었다. 한식은 이 다섯가지 맛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짠맛이 강조되어야 할 끼니 음식은 달고 오히려 달아야 할 후식은 달지 않다. 이 기본적인 다섯가지 맛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더 맛있는 한식이 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흔히 ‘한식 고유의 맛’이라 하는 매운, 고소한, 구수한, 시원한, 쫄깃한, 담백한 맛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매운 맛은 맛이 아니고 통증이며 나머지 맛들은 ‘한식 고유의 맛’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맛이다. 몇몇 맛들은 수준 낮은 한식을 포장하기 위한 맛이다.


2부에서는 각각 요리에 대해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밥, 반찬, 김치, 국물, 볶음, 직화구이, 활어회, 전, 만두, 두부, 순대, 술, 후식에 대해서.


밥은 집에서 요리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기밥솥으로 해도 40분은 걸린다. 집에서 할 수 있다. 때문에 모두가 집에서 매 끼니 먹기 40분 전 밥을 시작한다.

그러나 빵은 집에서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에 밖에서 사먹는다. 빵집이 가까이만 있다면 걸어갔다 오는 시간만 투자하면 빵을 사올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아침식사 논란’이 떠올랐다. 집에서 아내가 아침밥을 아내준다며 투정부리는 남편들의 얘기 말이다. 맞벌이면 그나마 이해한다던 사람들이 외벌이인 집 아내가 아침밥을 안해준다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아침밥을 하려면 식사시간 최소 40분 전에 요리를 시작해야 한다. 밥만 있어서는 안된다. 반찬도 해야 한다. 국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국까지 끓여야 한다.

유럽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아침으로 빵을 먹는 유럽 사람들은 아침에 빵집에 가서 빵을 사왔다. 집에 있는 쨈과 버터를 발라서 빵을 먹었다. 식사시간 40분 전에 일어나서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정 급하면 출근길에 빵집에서 빵을 사서 들고가면서 먹어도 된다. 만약 한국인의 주식이 빵이었다면 ‘아침식사 논란’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지속적으로 한식에서 자행되는 성차별에 대해 지적한다. 대부분의 요리들(특히 김치)은 노동집약적이고 이 노동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부과된다. 내가 사랑하는 밥이 성차별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식 고급 요리의 상징과도 같은 직화구이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생각나는 일이 있다.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방문하지 못했던 ㅅㅇ가든에 간 적이 있다. 아주 비싼 돈을 들여서 음식을 먹었는데 동네 고깃집보다 더 기분나쁜 상태로 식당을 나왔다. 고기가 맛없던 것은 아니다. 시설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음식값을 모두 음식에만 투자하고 손님들의 식사 환경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미각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오감을 모두 자극하는 행위이다. 한식에서는 대부분 미각에만 신경쓰는데 이 미각조차 제대로 신경쓰지 못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책이나 저자 블로그 글들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생각없음’이다. 본인이 만드는 음식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관성으로 음식을 만든다. 손님이 식당 간판을 보고 들어오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식사를 하고 떠나는 순간까지 모두 음식 만드는 사람이 신경써야 하는데 그런 것도 하지 않는다. 공부가 부족한건지 노력이 부족한건지 모르겠다.

이 ‘생각없음’은 비단 요식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서비스업에 적용된다. 하나하나에 대해 치열히 고민해야 더욱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한식에 대한 책을 읽는데 이상하게 읽는 내내 한의학이 떠올랐다. 한국인이 한식을 대하는 태도가 한의학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분명 수준이 낮고 개선해야 할 점이 너무나도 많은데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으며 더욱 발전할 기회를 놓치는 점이 너무나 똑같다.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무차별 폭격이 내려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한식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는 내가 한의학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와 흡사하다. 한식(한의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더욱 맛있게(효과적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과학적 고민을 통해 열등한 것을 버리고 외부의 좋은 것(한의학에서는 과학적 검증)을 적용하자는 점도 같다. 한식(한의학)의 세계화는 그 과정을 거쳐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