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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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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재미있다.

책장이 쉼없이 넘어간다.

그러면서 가볍지 않다.


‘아기가 죽었다’라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렇게 짧고 강력한 문장은 소설 내내 이어진다. 장황한 묘사는 없다. 작가는 딱 필요한 것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긴다. 그래도 충분하다. 독자는 배경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관심이 없다. 아기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만 관심이 있다. 작가는 그런 독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번역가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작가의 문장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 무신경하게 번역했다면 책이 지루해졌을 것이다.



미리암은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음악 프로듀싱을 하는 폴를 만난다. 그와 결혼했다. 그의 앞날은 법정에서 빛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연히 아이를 갖게 되었다. 하나, 그리고 둘. 미리암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출산 후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미리암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한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남편과 둘만 즐기던 데이트도 이제 못한다. 유망한 변호사였던 그녀는 이제 자녀 양육 외에는 얘기할 거리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본인이 너무 무능력해진 것 같다.


2017년 가장 핫한 소설이었던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른다. 임신과 출산, 육아 그리고 경력 단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다. 누군가는 아이를 키워야 하고 자연스럽게 경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여성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만이 아니라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인가보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유능했던 여성들은 사회에서 활약할 기회가 사라진다. 이는 여성 개인만의 손해가 아니라 기업, 그리고 국가의 손해이다. 최근 몇몇 국가에서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갈 길은 아주 멀다.



미리암은 운좋게도 길에서 예전에 친했던 변호사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사무실에 취직할 기회를 얻는다. 본인의 경력을 살릴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시 변호사로 일하고 싶었던 미리암은 아이들을 봐줄 보모를 구한다. 그리고 여러 번의 면접 끝에 루이즈를 보모로 얻는다.


루이즈는 정말 완벽한 보모다. 아이들과 너무나도 재미있게 놀아준다. 아이만 봐주는 게 아니라 집안일도 다 한다. 아이 부모가 늦게 퇴근해도 그 때까지 남아있다. 요리도 잘해서 미리암과 폴은 사람들을 초대해 그녀가 한 요리를 대접한다. 지금껏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다.


그런데 완벽한 보모였던 루이즈는 자신이 돌보던 두 아이를 살해했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것도 그런 사건들 중 하나이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은 그 사람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마지막에 경찰은 두 달간의 수사 끝에 본인이 루이즈에 대해 제일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장 재현에서 본인이 루이즈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루이즈가 왜 아이들을 죽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어쩌면 작가도 루이즈가 왜 아이들을 죽였는지 모르지 않았을까.



나는 미리암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소설을 읽었다. 미리암이 겪은 임신과 출산, 육아, 경력 단절 문제는 나도 많이 고민하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여성이 아니다.) 육아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많은 것들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루이즈를 통해서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배웠다. 루이즈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모욕을 당했다. 그녀는 유능했지만 항상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보다는 누군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루이즈가 아니라 '보모'로 인식했다.


과연 작가는 누구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소설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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