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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이븐 바투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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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여행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아랍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원본을 직접 번역한 사례가 많지 않다. 19세기 중반 알제리를 정복한 프랑스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 유일했고 영어로는 완역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 천재 학자인 정수일 씨에 의해 한국어로 완역되었고 이는 세계에서 2번째이다. 나 역시 당시 이 소식을 듣고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문체의 난해함, 문화적 이질감 등으로 인해 읽지 못하다 17년만에 읽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현대의 여행기와는 느낌이 다르다. 일단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슬람 문학의 문체가 큰 장벽이다.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알라에 대한 찬양, 한 명에게 붙는 수많은 수식어, 한 명의 이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이름들. 또한 책 곳곳에 위치한 기나긴 주석이 말해주듯이 이슬람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에 하나하나 주석을 읽다 보면 글의 흐름이 끊기는 것도 또다른 장벽이다. 나는 17년 전 이런 장벽들에 막혀 책을 포기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읽다보니 그나마 중반부부터는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조금 생겼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 경로를 살펴보자. 모로코에서 출발하여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집트로 간다. 이후 나일강을 따라 올라간 후 메카 방문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레반트(현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지역)로 이동한다. 이후 다마스쿠스에서 메카, 메디나 성지순례를 하고 이라크, 페르시아(현 이란)를 둘러본 후 아라비아반도 남부와 동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하다. 이후 메카에서 또 머물다가 이집트를 거쳐 아나톨리아(현 터키),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들어간다.

인도에서 델리 술탄의 신하가 된 이븐 바투타는 중국으로 가는 사절단의 일부가 되지만 중간에 낙오된다. 그는 인도로 돌아가는 대신 몰디브 제도로 갔고 거기서 지내다 스리랑카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간다. 이후 다시 뱃길로 인도, 아라비아반도를 거쳐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책을 읽기 전 '여행기'라고 해서 여행만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한 지역에 본격적으로 머물면 몇 달은 기본이고 몇 년씩 지내기도 했다. '법관'이라는 역할로 각 지역의 왕 및 통치자들 밑에서 일했다. 그는 혼자 여행하지 않고 수많은 동료와 시종들과 함께 여행했다. 어디를 가든 지역 통치자들에게 환대를 받았고 그들에게 선물을 받았다. 당시 이슬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에 이것이 모든 순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인지 아니면 이븐 바투타가 특별한 사람이라 가능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각 지역을 다니면서 그 동네 물가에 대해 꼭 언급을 남겼다. 또한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과일은 어떤 것이 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만약 그가 익숙한 이슬람 문화와 다른 문화권이라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문화가 있는지도 언급했다. 그가 익숙한 문화조차 어색한 나는 모든 문화가 생소했다. 그 중 그가 묘사한 음식들은 과연 지금도 그 지역에 가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700년 전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또 여행가고 싶은 지역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다마스쿠스, 메카, 바그다드, 바스라 등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델리까지. 그러나 무엇보다 가고싶어진 곳은 몰디브였다. 막연하게 '대표적인 신혼여행지'로만 알던 곳인데 이번 기회에 지도를 보니 1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기한 곳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출발하여 동쪽 끝의 중국까지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당시에도 특별한 사람 중 하나였을게다. 그러나 그처럼 태어난 곳에서 아주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아 보였다. 인도에도 안달루시아 출신 무슬림이 있고 중국에도 무슬림이 있었다. 이동수단이 열악하고 이동 중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음에도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머나먼 곳에서 살 수 있던 당시의 문화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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