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인생 우화 - 류시화

반응형

우화를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이 언제였을까? 아주 어릴 때 이솝 우화를 읽었던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화가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이 책을 골랐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작가 류시화가 유대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오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몇 가지는 본인이 창작하기도 했다.

어느 날 신이 전세계의 바보들을 모두 모아 마을마다 골고루 나눠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일을 하던 천사 하나가 실수로 폴란드의 헤움(Chelm)이라는 도시에 바보들을 모두 떨어뜨리고 만다. 헤움에 떨어진 바보들은 자기들끼리 마을을 이루며 살았고 본인들의 마을을 '현자들의 마을'이라고 불렀다. 


헤움의 주민들이 하는 행동은 너무나도 바보같다. 한 사람은 옷을 벗으면 자기가 누군지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볼까봐 목욕탕에 갈 때마다 붉은 끈을 손목에 매달았다. 그런데 목욕탕에 온 외지인이 그를 따라 붉은 끈을 손목에 매자 그는 그 외지인이 자신이 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또 한 사람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다 너무 졸린 나머지 길가에서 잠을 잤다. 자기가 갈 쪽으로 신발을 놓고 잠을 잤는데 길가던 다른 사람이 그 신발을 신고 가버렸다. 잠에서 깬 그는 헤움 쪽으로 놓여진 신발을 신고 헤움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이 헤움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는 평생 헤움과 똑같이 생긴 다른 마을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헤움 사람들은 많은 부분에서 너무나도 황당한 일들을 한다. 통나무를 가로로 싣고 오던 수레가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길을 지나지 못하자 마을 의회에서는 길가의 집들을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자 '위기'라는 단어를 금지하고 대신 '축복받은 환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위기를 극복하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독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바보들'이란 생각을 하며 주인공들을 비웃는다. 그런데 웃다보면 뭔가 뒷맛이 씁쓸하다. 헤움 사람들의 너무 바보같은 행동들이 실제 내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 자신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모두 본인이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헤움의 주민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헤움 주민들도 자기들 중 가장 똑똑한 7명을 모아 의회를 만들고 자신들을 현자라고 부른다.


바보같은 헤움의 주민들이지만 간혹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헤움의 한 부자(父子)는 헤움 바깥으로 여행을 떠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일을 해온 아들이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가 흔쾌히 같이 따라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여행에 참견한다. 여행을 가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저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한다.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거나 지적하지 않는 헤움에서 자란 아들이 이것을 어색해하자 아버지가 말한다.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나 역시 남의 일에 이것저것 참견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을 보다 보면 시청자들의 훈수 및 참견이 엄청나다. 많은 방송에 '훈수 밴'이라는 말이 달려 있을 정도이다. 헤움 사람들은 바보일지 모르겠으나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면에서는 오히려 바깥 사람들보다 낫다.


오랜만에 읽은 우화는 정말 재밌었다. 헤움의 주민들이 이번엔 어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할지 궁금해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짧은 것도 좋다. 바쁜 사람들도 잠깐잠깐 짬을 내서 한 편 한 편 읽을 수 있다. 만약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은 책을 원한다면 류시화의 '인생 우화'를 한 번 읽어보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