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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고대, 한반도로 온 사람들 - 이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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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것들 중 ‘거짓’이 많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민족은 단일 민족이다’라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는 단일민족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이런 생각을 깨뜨린다. 2천년전 한반도를 배경으로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이 땅에서 살았으며 지금까지 섞여왔는지 보여준다.


한반도에 존재했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부터 시작한다. 위만 조선의 시작인 위만은 중국에서 온 인물이었다. 그는 고조선의 준왕을 무너뜨리고 위만 조선을 세운다. 그가 이주민이었는데도 기존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고조선에 있던 수많은 중국계 이주민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왕이 된 이후에도 국호를 조선으로 유지하고 기존 조선 지배층을 그대로 기용했다. 중국계 이주민의 영향력이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존 세력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한군 중 가장 큰 것은 낙랑군이었다. 낙랑은 한나라가 멸망한 후까지 살아남았다. 낙랑에도 중국계 이주민들이 많았다. 옛 낙랑 지역에 있는 수많은 중국 스타일의 무덤들이 이를 보여준다. 


삼한의 구성원 역시 다양했다. 마한은 기존에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주 구성원이었다면 진한은 진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주 구성원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진나라에서 왔다는 정체성을 계속 유지했다. 이들은 진나라 멸망 이후 낙랑 지역 부근에 자리잡고 살다가 점점 밀려서 지금의 경상도 부근에 자리잡았다. 


한반도 북부에는 예맥족이 살았다. 예맥족은 주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는데 후에 말갈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은 지금의 경기도, 강원도 지역부터 함경도 지역까지 넓게 걸쳐서 살았다. 


한반도 남부에는 왜인도 살았다. 보통 한반도에 왜인이 살았다고 하면 ‘임나일본부설’을 떠올리면서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확실히 고대 한반도 남부에는 왜인들이 살았다. 그들은 독자적인 정치집단을 가지고 있었고 세력 역시 막강했다. 그들은 우리가 가야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가야 세력을 복속시키기도 했지만 광개토 대왕의 정벌 이후 역으로 가야에게 복속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에 있던 왜인들은 일본의 왜인들과 교류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왜인들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내 생각에는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는지 일본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다른 정치집단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살펴본 것처럼 고대 한반도에는 중국계, 예맥계, 마한계, 왜계 등 다양한 민족들이 살았다.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생각한 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기자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았다. 기자는 사실 한반도에 온 적이 없지만 한나라 시절부터 기자가 (고)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생겼다. 만들어진 것이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한사군의 정당성을 위해 고조선 역시 중국 사람인 기자가 와서 통치했다는 ‘기자동래설’을 퍼뜨렸다. 이것을 소중화(小中華)를 꿈꾸던 고려가 받아들였다. 고려는 기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고려 역시 작은 중국과 같은 문명국가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여기에 일연과 같은 당시 역사서 편찬자들이 가세했다. 그들은 그저 평양 지역에서 모시던 신, 단군을 이용했다. 요, 순과 같은 중국 고대 왕들과 비슷한 시기에 단군이 한반도에 문명 국가를 세웠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단군이 중국에서 온 기자에게 왕위를 양보하면서 한반도에 중국 문명과 같은 수준의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이 프레임을 조선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개화기 및 일제시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더 강화했다. 그래서 단기(檀紀)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단군 및 한민족 개념을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이제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프레임을 버릴 때가 되었다. 일본에게 점령당하고 독립을 추구하던 시기, 전국민이 하나로 합심하여 경제발전을 이루던 시기에는 민족주의 프레임이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다원화되고 다민족, 다인종화 되는 시기에 민족주의 프레임은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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