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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주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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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 [그 외 이야기] - 소반과 밥상 문화


위 글에서 나는 소반에 대한 얘기를 하며 한 책에 대해 언급했다. 드디어 그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 위주로 내용을 정리해보겠다.


1. 소반

소반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기 때문에 소반 얘기부터 해보자. 언제부터 소반이 쓰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기록을 통해 고려 시대에 '소조'라는 것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소조'는 아주 낮은 상이다. 이런 소조의 모습은 고려 및 조선 초기 자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초기 그림들을 보면 높이가 낮은 소조는 물론 높이가 꽤 높은 소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 그림에서는 소조를 발견하기 어렵다. 대부분이 소반을 쓰는데 저자는 그 이유로 온돌 문화의 보급을 꼽았다.

온돌은 우리의 전통 문화로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온돌을 즐기게 된 것은 18세기부터였다. 온돌 문화가 보급되면서 방바닥이 따뜻해졌다. 높이가 낮은 소조를 쓸 경우 상을 타고 올라온 열이 음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리가 긴 소반을 더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고려 및 조선 시대에는 구리로 만든 식기를 사용했다. 구리는 열 전도율이 높아서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들고 먹기 어렵다. 그래서 높이가 낮은 소조 대신 소반이 활성화되었다.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소반은 부유층에서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이 되면서 다양한 계층에서 소반을 사용하였다. 유교 예법이 널리 퍼지면서 1인 1상을 하게 되었고 그 상징으로 소반이 널리 퍼진 것이다. 

소반은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직후까지 널리 쓰였다. 1949년 정부에서는 소반 사용을 줄이고 공동식탁을 사용하라고 홍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교자상, 식탁을 사용하는 가정이 늘어났고 70~80년대 이후에는 소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2. 교자상

명절 때마다 교자상을 봤다. 그래서 교자상이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쓰인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자상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일본은 쇄국정책을 펴면서 나가사키에만 외국인들이 살 수 있게 했다. 나가사키에 살던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 차이나타운을 형성했고 그곳 식당에 중국 땅에서 쓰던 큰 탁자를 들여왔다. 큰 탁자에 놓인 접시에는 음식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를 본 나가사키 일본인들은 이를 자기들 요리에 적용하면서 '싯포쿠 요리'라 불렀다. 

그렇게 싯포쿠 요리에서 사용되던 큰 탁자는 일본이 조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서울에도 들어왔다. 일본요리집에서 이런 탁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조선인들은 이를 교자상이라 불렀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소반, 교자상, 식탁이 혼용되었다. 그러나 이 중 대세를 차지한 것은 교자상이었다. 아마 선진 문물인 일본 문화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좌식 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교자상을 사람들이 선택한 것 같다.


3. 한 상 문화

한정식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밥, 국과 함께 나오는 수많은 반찬을 강조한다. 한 상 가득 나오는 반찬을 여럿이 같이 먹는 것을 가리키면서 이를 한식의 특징이라고 소개한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인본의 문화인류학자 이시게 나오미치가 분류한 상차림 방식을 소개한다. 

1) 개별형 vs 공통형

2) 시계열형 vs 공간전개형

개별형은 개인별로 음식을 내는 것이고 공통형은 공동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계열형은 음식이 순서대로 나오는 것이고 공간전개형은 한번에 모든 음식을 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식 코스요리'는 개별형 + 시계열형이고 '한정식'은 공통형 + 공간전개형이다.

유럽 사람들이 개별형 + 시계열형의 식사를 한 것은 역사가 길지 않다. 19세기에 러시아의 요리사가 처음으로 시계열형으로 요리를 제공했고 그것이 프랑스를 거쳐 전 유럽으로 퍼진 것이다. 유럽의 농민 가정에서는 20세기에도 공통형 + 공간전개형으로 식사를 했다.

조선 시대에도 왕실에서는 연회 때 개별형 + 시계열형으로 식사를 했다. 동시에 일상 식사는 개별형 + 공간전개형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소반에 1인 1상을 내었다. 

그러다 해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공통형 + 공간전개형의 식사 방법이 널리 퍼졌다. 교자상이 널리 퍼지면서 개별형보다는 공통형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교자상이나 식탁을 사용하면서도 개별형 + 공간전개형으로 식사 방법이 퍼졌다. 저자는 이렇게 달라진 원인을 위생 개념의 차이에서 찾았다. 19세기부터 일본은 위생 개념을 강조해서 공동으로 먹는 음식을 줄일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위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공통형이 널리 퍼졌다.

즉, 한국의 전통적인 상차림이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 상 가득 나온 음식을 여럿이 같이 먹는 것'은 해방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것이지 그 이전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먹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전통적인 것'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교자상에 한 상 가득 밥, 국, 반찬을 내어 온 가족이 먹는 것을 '전통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교자상은 들여온 지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고 모두가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문화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역사가 짧은 것이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많다. 가까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누군가 만든 것을 모두가 전통이라고 믿게 되는 것 말이다. 밥 한 공기 역시 비슷하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밥 한 공기는 큰 밥그릇에 고봉으로 쌓은 것을 말했다. 그러나 70년대 서울시에서 밥 한 공기의 양을 정했고 그것이 우리가 식당가서 1000원 주고 먹는 밥 한 공기의 크기가 된 것이다. 아마 고봉으로 밥 먹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나면 우리는 '밥 한 공기의 양'을 전통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언제까지 '전통'에게 낚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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