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의료비
내가 근무하는 보건지소는 원내지소이다.
우리나라는 의약분업이 되어 있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받아야 하지만
약국이 없는 지역은 보건지소에서 약까지 준다.
원내지소의 진료비는 약을 며칠치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2019년 현재, 3일이면 900원이고 4일이면 1100원이다.
1달치(30일)를 받아가면 15000원이다.
이를 본인부담금이라 한다.
실제로 진료비 + 약값까지 하면 훨씬 더 많이 나오지만
본인이 직접 부담하는 것은 저만큼이라는 얘기다.
이 가격이 원외지소에 가면 달라진다.
원외지소는 다른 병원과 마찬가지로 환자가 약을 직접 받을 수 없다.
의사는 진료 후 처방전만 준다.
따라서 진료비는 항상 500원이다.
보건소에서는 어떨까?
보건소는 보통 시, 군, 구의 중심지에 있기 때문에 약국이 주변에 항상 있다.
그렇기에 진료비는 원외지소와 같이 500원이다.
본인부담금을 두는 이유
이렇게 본인 부담금을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는데 1원도 안 내고 공짜로 받는다면 환자는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게 된다.
심지어 전혀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심리적 벽을 세워둔 게 본인부담금이다.
500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보건소 한 번 갈 때마다 500원을 내야 한다면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발이 덜 가게 된다.
병원 입장에서 본인부담금은 껄끄럽다.
환자가 한 번이라도 병원을 더 와야 병원은 이익인데
본인부담금 때문에 환자가 병원을 잘 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할인해주거나 면제해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다른 병원에 갔을 때보다 우리 병원에 왔을 때 환자가 돈을 덜 내면 환자가 우리 병원에 더 많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의료법에서는 이런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
누구든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ㆍ알선ㆍ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는 할 수 있다.
1. 환자의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개별적으로 관할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사전승인을 받아 환자를 유치하는 행위
2.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에 따른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외국인(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제외한다)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행위
보건소의 불법행위
많은 지역 보건소에서 이 법을 위반하고 있다.
65세 이상 환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곳이 엄청나게 많다.
환자가 보건소에 와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진료받고 약 받아가며 물리치료까지 받아간다.
이런 지역은 보건소뿐만 아니라 원내지소에서도 본인부담금이 없다.
한 달치 약을 받아가면서 지불하는 돈은 0원이다.
약의 가격과도 전혀 상관없다.
남들은 한 달에 10만원씩 돈 내면서 먹는 약도 그 지역에서는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이런 무료 보건소가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보건소에서도 65세 이상이면 물리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일단 보건소가 위치한 곳은 시, 군, 구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무조건 의원이 몇 개씩 있다.
보건소에서 본인부담금을 면제 서비스로 환자들을 유인해가면 당연히 주변 의원들에게는 피해가 간다.
2018년 의원 협회는 이를 지적했다.
의원협회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 대부분의 보건소는 65세 이상 노인 환자의 진료비를 면제하거나 할인해주고 있다. 환자가 부담해야 할 약제비 일부를 조제한 원외약국에 대납해주는 곳도 많다"고 밝혔다. (중략)
의원협회는 "보건소는 일선 의료기관의 본인부담금 면제나 할인에 대해서는 경찰에 신고해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환자유인행위를 일삼고 있다"며 "어떤 법적 근거로 보건소에서 이와 같은 황당한 일을 하고 있는지 질의하는 민원신청을 보건복지부에 신청했다"고 말했다.
의원 협회의 지적대로 보건소는 의료기관이 하는 불법행위를 확인해서 신고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보건소 스스로가 이런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교통단속하는 경찰이 스스로 교통법규를 위반한 꼴이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불법행위이니 보건소의 본인부담금 면제 행위에 제동을 걸까?
복지부는 답변서를 통해 “보건소 및 보건진료소의 무료진료는 현 의료법상 보건진료소의 본인부담금 면제 등에 관한 법령에 근거해 불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황당하게도 보건소의 무료진료는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답변했는지는 기사에 나와있지 않다.
어쩌면 아무런 근거 없이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 이런 행위가 있었을까?
내가 찾은 가장 오래된 기사는 2003년 기사이다.
이기현 함양군 보건소장은 “복지부에서 명백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놨고 조례에도 근거가 있으므로 의사회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가 이같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해도, 최종적인 법 해석 권한은 법원에 있으므로 결국은 재판을 통해서나 불법성 여부의 논란이 잠재워 질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medicaltimes.com/Users/News/NewsView.html?ID=4373
2003년 이전부터 이런 행위는 계속되었고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에 대해 누군가 소송을 걸어 법원에서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가 없다.
복지부나 지자체는 이 제도를 금지했다가는 표가 날아가기 때문에 이 제도를 유지하고 싶어할테다.
의사협회에서도 이 외에도 다른 많은 이슈가 있어서 이 이슈로 복지부와 다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보건소가 진료기능을 갖고 있는 한 이런 불법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정부가 하는 것이니 불법행위라도 눈감아주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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