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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7년~] 진료실에서

왜 의사는 내 아픔에 공감해주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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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내랑 밥을 먹는데 아내가 사레가 들린 적이 있다. 기침을 계속 하는데 나는 그냥 밥을 먹었다.

기침을 마친 아내가 내게 엄청 화를 냈다.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히 밥을 먹을 수 있냐'고.

그래서 내가

'사레 들리는 것으로는 죽지 않는다'

고 했다가 더 혼났다.

 

최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위 사례가 떠올랐다.

이런저런 불편감과 통증이 있는데 의사는

'시간 지나면 좋아질 거에요.'

라는 말로 넘어가버렸다.

나도 의사니깐 진료봐준 의사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나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지만 저런 말 하나가 되게 서운했다.

이것도 불편하고 저것도 불편하고 일상생활에서 신경쓰이는 것이 많지만

그것에 대해 공감해주거나 코멘트해주지 않고 '좋아질 거에요'라는 말로 넘어가버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참고로 저 말을 들은지 한 달정도 되었는데 여전히 불편하고 아프다.)

그제서야 아내가 했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왜 의사들은 내 아픔에 공감해주지 못할까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프거나 불편하기 때문에 병원을 간다. 

사람들은 평소에 1~2 정도의 통증은 참다가 5 정도가 되면 병원을 찾는다.

5 정도의 통증을 겪는 사람도 흔하지 않다.

많은 환자들은 주변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 되어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병원에 오는 순간 그는 주변에서 가장 안 아픈 사람 중 하나가 된다.

병원에는 훨씬 큰 통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50이나 100, 아니면 그 이상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들은 100의 통증을 가진 사람에 비해 5의 통증을 가진 사람은 '사소한' 통증을 가진 것이라고 판단한다.

때문에 5의 통증을 가진 사람에게는 조금 덜 신경쓰게 되고 사용하는 단어도 '당신의 통증은 약한 거에요'라는 뉘앙스를 보이게 된다.

 

위 사례에 대한 변명

 

맨 처음 사례로 돌아가보자.

의사 입장에서는 기침을 하는 것 자체가 이물질이 기도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어 작용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만약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갔는데 기침을 하지 않는다면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 있으니 위험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이 사람은 100의 통증을 가진 사람이기 보다는 5의 통증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의학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옳은 판단은 아니었다.

 

평소 0~1의 통증을 가진 사람에게 5의 통증은 흔히 겪지 못한 엄청난 통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의 통증은 상상도 못하면서 산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가 100의 통증이 아니기에 약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5의 통증을 가졌기에 심한 통증이라 생각했어야 했다.

일상생활에서 신경쓰이게 만드는 통증과 불편감 하나하나에 더 신경썼어야 했다.

나는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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