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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7년~] 진료실에서

답답한 의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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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료원에 호흡기 전문의가 없어 전문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 이동우 서귀포의료원 응급실 과장이 응급조치를 취한 뒤 상급병원인 제주대학교병원과 제주한라병원에 전원(병원 간 이송)을 문의했지만, 중환자실은 모두 만실이었다.

"제주대병원도 없고 한라병원도 없고 지금 우리 병원보다는 더 상급병원으로 가야 하는 건 맞는데 지금 자리가 없어서. 저희가 일단 항생제 치료하면서 기본적인 처치를 해보고요. 반응을 좀 볼 건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그러면 언제든지 다시 전원 문의해서….”

이 과장이 딸 김 씨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설명했다. 덤덤해 보였던 김 씨는 한 시간 정도 지나 "엄마가 비행기 타고 육지(다른 지방)갈 형편이 안 돼 답답하다"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답답하죠. 제주도가 그렇지. 저희 친척들은 아예 다 육지로, 삼성병원으로 가요. 처음부터 가요 처음부터." 김 씨의 말에서 제주지역 의료 체계에 대한 불신이 묻어났다.


며칠 전 내과 의사를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내게 '요새 통증의학과 의사 페이가 내과 의사의 1.5배는 되더라'는 얘기를 했다. 통증의학과 의사가 왜 내과 의사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까? 왜냐 하면 통증의학과 의사가 내과 의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주기 때문이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통증의학과 진료에 자부심이 있다. 통증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통증이 있으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절되지 않은 통증이 지속되면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통증을 조절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 내가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목숨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목숨과 연결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관리하지 못한다면 통증 조절을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집으로 따지면 내과 의사는 기둥과 서까래다. 통증의학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은 집을 예쁘게 꾸며주는 장식물들이다. 바람직한 사회에서는 내과 의사가 집을 튼튼히 유지해주고 통증의학과 의사가 집을 더 예쁘게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기둥과 서까래 역할을 하겠다고 내과와 외과에 지원했던 의사들이 사회에 나와서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집을 예쁘게 꾸며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기둥과 서까래 역할을 하면 돈을 많이 못 벌기 때문이다.

기둥과 서까래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장식품 역할을 하고 있으니 집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평소엔 멀쩡한 듯 보이지만 비바람이 조금만 불면 곧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롭다. 위에 언급한 중환자실 문제가 대표적이다.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지금 무너지기 직전의 집에 살고 있다.


정부도 이 위기를 알고 있다. 그래서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공공의학에 종사할 인력을 따로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세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이런 계획들은 다 효과가 적을 것이다.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기둥과 서까래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기둥과 서까래 역할을 하면 수입이 적어지고 장식품 역할을 하면 수입이 많아지는 환경에서는 아무리 인위적인 조작을 한다 해도 잠깐 변하는 듯하다 다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집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의사들을 향해 '왜 기둥과 서까래 역할을 안하느냐'고 욕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욕만 한다고 의사들이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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