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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1년] 본4 실습

2011 두번째 실습, 강남 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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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렸을 때 정말 싫었던 것이 이비인후과에 가는 것이었다. 비염이 좀 있어서 코가 자주 막혔는데 이비인후과에 가면 석션을 이용하여 코를 막고 있는 것을 빼내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상당히 아프다. 고통에 약한 내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아팠다. 코 뿐만이 아니었다. 귀에 있는 귀지를 제거하고 소독을 할 때에도 너무 아팠다. 어렸을 때의 이런 아픈 기억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비인후과 실습은 외래 or 수술방이었다. 학생이 3명이었으니 대충 2/3의 실습이 외래방에서 이루어졌다. 외래방 실습이라 하면 교수님 외래에 참관하면서 환자를 어떻게 보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이비인후과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코 석션하고 귀지 빼내는 것 등등의 일들은 매우 루틴하게 이루어진다. 즉 엄청나게 많은 환자들이 코 석션을 한다는 것이다. 코 전문 교수님 외래에 참관할 때에는 특히 더했다. 비중격만곡과 부비동염 전문이신 분이라 거의 대부분의 환자가 코막힘 증세를 호소했다. 코가 막혔을 때에는 일단 막힌 것을 뚫어주는 게 정답. 일단 혈관 수축제를 코에 칙칙 뿌리고 석션을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을 보고 있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환자의 코에 약물을 뿌리고 석션을 하는데... 왜 내 코가 뻥 뚫리고 석션하는 느낌이 나는건지...;;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서 요상하게도.. 환자 코에 석션하는데 내 코가 아팠다. 이런 외래를 하루에 세네시간 씩 보려니 죽을 것 같았다. 무언가 환자와의 공감대...라기보다는 파블로프의 개 같은 고전적 조건화의 삘이..

#2.
교수님 중 한 분은 음성 전문이었다. 그 교수님 외래에 있으면 목소리가 안 나오거나 이상하게 나오는 사람이 정말 많이 왔다. 평소에 살면서 목소리 이상한 사람은 보기 힘들었는데.. 거의 전국에서 vocal cord에 이상 있는 분들은 다 오신 삘... 

수요일 오후에는 2주마다 보톡스 주사를 놓는다. 흔히 생각하는 피부 미용을 위한 보톡스가 아니라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분들을 위한 치료 목적의 보톡스였다. thyroid cartilage와 cricoid cartilage 사이로 주사 바늘을 꼽고 보톡스를 놓는 기술은.. 참으로 신기했다.

한 환자가 외래방에 들어왔다. 역시 보톡스 맞으러 오신 분이었다. 기록을 보니 몇 년 만에 오신 것이었다. 보톡스는 보통 4개월이면 효과가 떨어진다는데 어떻게 지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과의 대화 속에 그 해답이 풀렸다. 미국 갈 일이 있어서 그 사이 미국에 가 있었는데 교수님의 소개로 미국에서 보톡스를 맞았다고 했다. 이 분에게 미국에서 보톡스를 놔준 분은 이 보톡스 치료의 창시자(?) 같은 분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격 이야기가 나왔다. 
교수님이 
'미국에서는 보톡스 맞는게 얼마에요?'
라고 묻자 환자분이
'비싸요. 한 번 맞는데 130만원 정도 들었어요.'
라고 답하신다. 대충 가격을 알고 있던 나는 충격에 빠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보험이라 비싼데도 30만원인데...
교수님도 우리를 보며
'우리나라에서는 30만원도 비싸다고 하는데...'
하면서 말을 흐리신다.
그 전에 봤던 환자분에게
'이게 지금 보험이 안되서 비싼데 보험이 되면 몇 만원에 맞을 수 있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기에 그 느낌이 더욱 강렬했다.

#3.
목을 보시는 교수님은 강남 ENT에서 가장 시니어셨다. 나이도 지긋하신데다 머리도 좀 빠지시고 말도 매우 천천히 하셨다. 외래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교회 사람들이랑 통화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교회에도 무척 열심이신듯 했다. 첫 날 첫 외래가 이 교수님 외래였는데 외래를 보면서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이식외과 외래 이후 처음이랄까..

이 교수님은 한 환자를 무척 오래 보셨다. 별 일 없는 환자야 빨리 보시지만 조금 이상이 있는 환자에게는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셨다. 9시부터 외래 시작인데 3시간동안 30명을 보셨다. 6분당 1명꼴. 이렇게 말하면 1명당 6분씩이니깐 짧은 것 같지만 환자에 따라서 치료 거의 막바지인 경우 1분만에 나가는 분도 있으니 엄청난 것이었다. 환자에게 설명도 엄청 꼼꼼하게 해주시고... 외래를 보면서 내 주변에서 목이 불편하면 바로 이 교수님에게 맡겨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이렇게 환자를 천천히 보신다고 외래 환자가 적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통 아무리 늦어도 1시 전에는 끝나는 게 외래의 관례인데... 이 교수님 외래는 2시를 넘겨서 끝났다. 2시는 오후 외래 시작 시간이다. 즉, 교수님은 이제 막 오전 외래를 끝냈는데 밖에는 오후 외래 첫 환자가 이미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오전 외래 후 외래방 앞에는 외래 시작이 지연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2시 10분 조금 넘겨서 외래가 끝났는데 2시 반부터 오후 외래 시작이었다. 점심은... 드시기는 하나?;;

환자들은 꼼꼼하게 설명해주는 의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교수님이 바로 그런 스타일의 의사인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꼼꼼하게 설명해주다 보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환자는 한 명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은데... 그 환자들에게 일일이 다 설명해주다 보면 지긋이 나이 든 교수님이 점심도 편히 못 드시고 외래를 봐야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무엇이 그 분의 편안한 점심을 앗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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