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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1년] 본4 실습

응급의학과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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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촌 응급실 진찰실에 있다 보면 쫓겨나는(?) 환자들이 꽤나 된다.
대부분은 3차병원 응급실에서 받을 만큼 위중하신 분들이 아닌 경우이다.
하지만 간혹 위중하신 데도 쫓겨나시는 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신장이식을 받고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인데 갑자기 열이 나시는 분, 혹은 투석하고 있는데 복막염이 의심되는 증상을 가지고 오신 분...
당장 입원을 시켜서 혹시 더 큰 이상이 없나 관찰해야 하는 분들이다.

실습을 돌던 어느 날 '정말로'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서 이런 분들을 그냥 돌려 보냈다.
특히 이식 받고 있다가 열이 난 분들은 그 날 여러 명 오셨다.
응급의학과 선생님도 당장 응급실에 접수시켜야 되는데 자리가 너무 없어서 접수 못 시킨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안타깝고..

하지만 다른 날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케이스에 비하면 훨씬 덜 위중한데도 응급실에 자리가 남아 접수가 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두 경우를 보면서...
결국은 아프려면 다른 사람들이 안 아픈 날 아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ㅁ-;
죽고 사는 건 결국 사람의 운인가..?;

#2.
응급실에 있으면서 정말 별의별 증상의 환자들이 많다.
그 중 가장 답답한(?) 것은 정말 가벼운(다른 중환들에 비해서..) 증상으로 응급실을 오신 분들이다.
강남 실습 중에는 거의 못 봤는데 이상하게 신촌 실습 중에는 조금 아파서 오신 분들이 꽤나 되었다.
(물론 주호소는 복통 혹은 두통으로 간단하지만 기간이 수 주 이상 지속되었다거나 로컬에서 여러 번 치료받았는데 안 된 분들도 있다.)
그냥 동네 병원 가시지 왜 꼭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신촌 응급실로 오시는지...
너무나도 아픈 것은 이해가 된다.
나 역시 통증에 대한 민감도는 전국 몇 순위 내에 든다고 자부하는(-_-?) 사람이니깐.
하지만 본인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잘 대우받으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해야지, 그냥 큰 병원을 무작정 찾아가는 것은 좀 아니라고 본다.
큰 병원에는 오늘내일 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가벼운 분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우받게 되지만
중소병원 응급실에는 환자가 그닥 많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환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일반인이 증상을 보고 본인의 위급도를 결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일반인이겠냐만은...

#3.
강남 베스티안 병원에 하루 실습을 갔다.
화상치료 전문 병원으로 서울에는 딱 두 곳(한강성심병원과 함께)있는 곳이다.
운 좋게도(?) 내가 실습을 가는 날 화상을 크게 입은 환자가 와서 화상 치료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의 상황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화상을 입어서 병원으로 실려온 사람은 모두 세 명.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었는데 그들의 관계는 아버지, 어머니, 큰 딸이었다.
아버지는 대충 60%, 큰 딸은 50%의 화상을 입었고 어머니는 90%의 화상을 입었다.
어머니의 경우 허리 라인을 빼고는 전부 다 2도 이상의 화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마 집에서 잠을 자다가 불이 난 모양인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환자들의 예후에 대한 응급의학과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우선 큰 딸은 그나마 화상 부위가 하체로 제한적이고 심하지 않고 젊기 때문에 흉터는 남겠지만 아마 살거야, 아버지는 손가락이 모두 타서 최소한 손가락은 모두 절단해야 하고 아마 손목까지 절단해야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꽤 높은 확률로 살게 될거야. 어머니의 경우 90% 화상을 입었지? 아직까지 난 90% 화상 입고 살아난 환자를 본 적이 없어.'

초기 치료를 하는 내내 생각난 것이 '우리집에 불 나면 어쩌지?'였다.
순식간에 건강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화재.
자나깨나 불조심이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화상 초기 치료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올라가는데 환자 친척들이 한 가지 정보를 더 내게 주었다.
'작은 딸은 하나도 안 다치고 무사해요.'

#4.
강남 응급실은 아무래도 주변에 학교가 많다보니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파서 온 학생들도 있지만
외상으로 오는 학생들도 꽤나 자주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가위에 손가락 베인 아이,
농구하다가 손가락 삔 아이,
역시 농구하다가 눈꺼풀 찢어진 아이 등등..

그 중 압권은 싸우다가 얼굴 한쪽이 퉁퉁 부어오른 아이었다.
눈은 주먹만해지고 입술도 엄청 두꺼워졌다.
응급실 기록에는 '서로 싸우다가'로 되어 있지만 상대방은 거의 멀쩡한 것을 봐서 일방적으로 맞은 듯했다. (때린 아이는 손이 아프다고 왔다.)
둘 다 중1인데 맞은 아이는 자그마하고 때린 아이는 덩치가 꽤나 되었다.

이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애들아, 싸우지 마... 폭력은 나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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