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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7년~] 진료실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떠올리는 메르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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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몇 년도에 이슈가 되었나요?"

라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

적어도 나는 할 수 있다.

2015년.

왜냐 하면 당시 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전공의 3년차 때였다.

메르스가 확산되었을 때 나는 중환자실 근무였다.

4년의 전공의 생활 중 중환자실은 딱 2달 도는데 하필이면 그 2달이 메르스랑 제대로 겹친 것.

덕분에 메르스 의심 환자를 처리하는 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전공의의 고생은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당시 중환자실 담당 교수는 호흡기내과 김 모 교수님이었다.

그 분은 내과계 중환자실을 담당하시고 나는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근무했으니 메르스가 아니었다면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을게다.

하지만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병원은 '청정구역'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중환자실 입실 환자를 전수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과거력, 중동 지역을 방문한 과거력을 확인한 후 담당 교수에게 컨펌을 받고 입실을 허가하는 프로세스를 갖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는 외과계 중환자실은 마취과가 알아서 입퇴실을 관리하였고 야간에 생긴 응급 중환자의 경우 특별하게 교수 노티 없이 입실을 진행했으나 이제는 모든 환자를 하나하나 다 중환자실 담당 교수에게 연락해서 입실을 확인받아야 했다.


문제는 중환자실 입실 환자가 낮에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간 근무 중 중환자실 입실 환자가 생겨서 새벽에 내과 교수님의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 입실을 확인받은 것이 수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면서 교수님의 다크 서클이 매우 진해졌다.

누가 봐도 매우 피곤해보였다.

교수 입장에서 보면 낮에 본인 외래도 보고 입원환자도 보면서 중환자실 관리도 해야 하는데 메르스 때문에 메르스 관련 업무도 늘었을 것이다. 게다가 밤에 잠을 자려 하면 내과계,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환자 입실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오는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힘든데도 전화를 걸었을 때 짜증을 낸다거나 대충 받는 법이 없었다.

항상 평온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으셨고 내게 이것저것 확인하셨다.


결국 몇 주간의 메르스 집중 방역 기간 동안 내가 근무했던 병원은 '메르스 청정 구역'을 유지했다.


외부에 있던 그 누구도 이 병원 중환자실 담당 교수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마 병원 내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중환자실 의료진이 얼마나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했는지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도 질병관리본부, 각종 병원들의 직원들은 엄청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사스, 메르스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 동안 준비도 많이 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들을 직접 보는 의료진들은 본인이 새로운 매개체가 될 수도 있으니 집에도 잘 못 가고 개인 활동도 줄였을 수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나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들은 점점 퍼져가는 질병 때문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노고는 높게 쳐주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들의 잘못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업무를 열심히 해서 1000명에게 확산될 것을 1명에게만 확산되게 했어도 사람들은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욕한다.

제발 이제는 그들을 욕하기 보다는 격려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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