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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실습 넷째 주> 신촌 감염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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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염내과'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 과에서 어떤 환자를 보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환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기 힘들 것이다. 우선 감염내과는 말 그대로 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감염된 환자를 보는 과이다. 흔한 감기나 장염 같은 것을 다루기도 하지만 3차병원에 있는 감염내과이다보니 그런 질환 등은 로컬로 넘기고 주로 심한 감염이나 드문 감염을 주로 다룬다. 이런 외부에서 감염된 환자 외에 감염내과에서 특히 중요시하는 환자는 바로 병원내 감염이다. 병원내 감염이란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 감염되는 경우인데 우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면역력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병원내 감염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될 수 있어서 병원내 감염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항생제 처방에 대한 규제(?) 역시 감염내과에서 담당한다. 뉴스에서 항생제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균주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 나오는데 그런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감염내과에서는 다른 과에서 쓰는 항생제 처방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감염내과의 맡은 범위가 병원 전체에 있기 때문에 감염내과의 환자는 매우 많다. 지금까지 돌았던 내과의 3개 분과가 주로 만성질환이었기 때문에 입원 환자는 드물고 주로 외래 환자였다면 감염내과의 경우엔 급성이나 아급성의 환자가 주이기 때문에 입원환자가 많다. 한 교수님의 입원환자가 30명 내외 정도. (종양내과나 신경과 같은 곳은 이보다 더 많다.) 이 환자들을 학생들이 모두 나눠서 담당하게 된다. 한 조에 7명이니 대충 1인당 4명 정도의 환자를 일주일동안 관찰하면서 어떤 과거력이 있고 현재 증상은 어떠하며 어떤 질병이 예상되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2. 환자 목록을 쭉 보는데 특이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토종 성씨가 아니었고 이름 역시 매우 특이했다. 레지던트 선생님께 외국인 같다고 하니깐 출신국가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한국 국적이고 우리말 역시 매우 잘한다고 하셨다. 아마 환자의 신상정보보다는 질환 쪽에 더 관심을 가지시다 보니 그런 건 물어보지 않으셨던 듯. 또 그런 질문이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할 수도 있으니깐 안 물어보셨을 수도 있다. 만약 나였으면 첫 질문이 '이름이 좀 특별하신데...'라는 문장으로 첫 질문을 꺼냈을텐데.... 회진을 같이 돌면서 결국 선생님이 나 대신 환자에게 물어보셨다. 직접 출신 국가를 물은 것은 아니었고 여행력을 통해 유추하는 정도? 결론을 말하면 그 환자분은 러시아 출신이었다. 우리나라에 온지 한 10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남편도 있고 애도 있다고 하셨다. 한국어 구사 능력 역시 발음이 약간 외국인스러운 거 빼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과 동일한 수준.(외모도....) 그 환자분이 특이한 것은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증상 역시 너무나도 특이했다. 열이 3일간 났다가 3일간 안 났다가를 한 달 반 정도 지속되다가 입원할 때엔 너무 심하게 나서 입원하게 되었다고 했다. 더 특이한 건 입원 이후 체온은 며칠간 정상이었다는 것. 환자분은 대충 이쯤이면 다시 열이 날 cycle인데 열이 안 나니 이상하다고 하셨다. 담당 교수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은 그저 웃을 뿐. 환자가 증상이 있었다는 데 그 증상이 입원 후에 말끔히 사라지니; 열이 없으니 해열제를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입원하는 의미가 없고... 이래저래 난감할 뿐이었다. ---- 실습 마지막 날 보니 그 환자분은 퇴원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마 더 이상 열이 나지 않았나 보다. 퇴원 준비를 하면서 남편분도 오시고 시어머니, 그리고 딸로 추정되는 아이도 자리를 같이 했다. 회진 돌 때엔 아프다며 누워계시던 분이 아이를 보며 즐겁게 웃으시는 걸 보니 나도 왠지 흐뭇해졌다.
3. 병원이라는 곳이 아픈 사람이 많은 곳이고 또 대학병원은 그 중에서도 심하게 아픈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러나 감염내과처럼 죽는 경우를 꽤 자주 보는 경우는 아마 드물 것이다.(응급의학과나 종양내과 정도?) 우리보다 한 텀 먼저 돈 조의 이야기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회진 돌고 30분 후에 환자가 돌아가신 경우. 말로만 들었는데 무언가 충격이었다. 그런 일이 과연 내게도 일어날까 의문이었는데... 실제로 돌면서 우리조 7명 중 내게만 그런 일이 생겼다. 내가 이번 주를 시작하면서 4명의 환자를 맡았다. 대충 환자 파악을 한 후 회진을 돌면서 내가 맡은 한 할머니 회진을 돌면서 따님으로 보이는 분이 상태가 악화되더라도 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셨다.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다음날 환자목록을 보니 그 할머니가 입원환자 목록에 없었다. 기록을 보니 전날 퇴원하셨다고 되어 있었다. 학생은 퇴원환자의 전자차트를 볼 수 없었기에 어떤 이유로 퇴원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생술 얘기까지 나왔는데 바로 당일에 퇴원이라니.. 어찌어찌한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건강한 상태로 퇴원한 게 아니라 돌아가셨기에 퇴원했다고 기록에 나온 것이었다. 사망시각은 내가 회진 돈 날 저녁 6시 경. 환자를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4. 두번째 환자는 Necrotizing fasciitis(괴사근막염)라는 질환으로 입원한 분이었다. (Necrotizing fasciitis는 피부에 감염이 되어 근막이 모조리 괴사되는 질환이다.) 히스토리(과거력)를 보면 25년 전에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지마비에 걸려서 식물인간 상태로 계속 지내신 분이었다. 원래 괴사근막염은 수술을 하여 괴사된 조직을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제1순위인데 보호자분께서 수술을 거부하셔서 약물 치료만 하는 분이었다. Lab 상에서 수치들은 점점 정상을 향해가는데 피부의 병변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십 일을 입원하셨는데 그 동안 딱히 바뀌는 것이 없고 일정한 상태를 보였다. 이 환자분을 만나러 가면 사지마비 상태이기 때문에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매일매일 상태가 급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했기 때문에 딱히 문진을 할 것도 없었고 환자분이 사지마비이기 때문에 신체검사를 할 수도 없었다.) 환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짧게 나누고 갈 때까지 환자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회진 돌 때에도 환자분은 그저 일정한 자세로 누워있고 보호자분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회진을 돌다가 실습 마지막 날 환자 보호자분이 퇴원의사를 밝히셨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들 환자를 돌보느라 힘들었고 환자 본인도 수술하는 것이 힘들 것이고 그냥 집에서 돌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결정을 했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만약 집에 모시고 돌아가도 정기적으로 외래로 오셔서 병변 부위 치료를 받으시겠냐니깐 그러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럼 근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겠냐고 하니깐 그저 항생제 처방만 받아서 가시겠다고 했다. 또 만약 상태가 악화되어서 환자가 위급해지면 응급실로 오시겠냐고 하니깐 보호자께서 그냥 집에서 지켜보겠다고 하셨다. 즉 보호자들이 환자를 더이상 돌보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20살에 사지마비에 빠진 형제 혹은 자식을 25년 간 뒷바라지하려니 형제나 부모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덕적으로는 그들을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바라본다면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이런 마지막 대화가 오갈 때 나를 더 힘들게 한 일이 벌어졌다. 환자분이 조금씩 움직이신 것이었다. 내가 올 때마다 그저 가만히 누워계시던 '사지마비' 환자분이 손가락을 꿈틀거리고 몸을 비틀거리셨다. 일반인들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마치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가족들에게 반항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만감이 교차하였다. 사지마비 환자조차 움직이게 만드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이제는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가족의 가슴아픔...

이번 주는 워낙 맡은 환자도 많고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추억에 남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이 쯤에서 줄이고자 한다. 처음 뵈었을 때엔 상태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간암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마지막엔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된 환자분도 있었고 모든 Lab수치나 CT, MRI 등등의 영상 검사도 정상치를 보였으나 엄청나게 많은 증상을 호소하던 환자분도 있었다. (후자는 무슨 병원이 이러냐고 회진도는 교수님이나 레지던트 등등의 모든 의사들을 비난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환자분이 호소하는 증상은 기질적 질환이기 보다는 정신적인 질환이었다.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우리가 흔히 겪는 스트레스 받아서 소화 안되는 거나 머리아픈 것과 같은 경우. 그러나 그 환자분은 정신과의 'ㅈ'자만 꺼내도 분노하셨다.) 처음으로 ICU에 들어간 일이나 VRE 병동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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