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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0년] 본3 실습

<실습 셋째 주> 신촌 알레르기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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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레르기(Allergy)라는 것은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의학용어로는 '예상과는 다른 신체반응' 정도가 적당한 뜻이 되겠다. 즉, 알레르기 질환은 의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신체의 반응이 나타난 질환들이다. 대표적으로는 우리가 많이 들어본 천식이나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 피부염 등이 있다.
2. 전 텀을 돈 형이 알레르기내과가 아니라 널레르기내과라면서 실습이 엄청 널럴하니깐 오후에 뭐할지 생각해두라고 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실습을 나갔는데 웬걸. 아주 빡센 실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널레르기라고 부를 만한 수준도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언가 특별히 한 것은 없는데 여유 시간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던 한 주였다. 2~3시간 쭉 여유시간이 있어야 기숙사에도 가서 좀 쉬거나 하는데 길어야 한두시간의 여유에 계속 무언가가 있고 무엇보다도 논문발표 준비 때문에 더욱 마음이 급했다. 결국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화,수,목 3일이 지나갔고 금요일에야 겨우 약 6시간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3. 사실 본과 2학년 때 면역학 시험을 보면서 알레르기 내과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게 되었다. 당시 펠로우 선생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주인이 하인 대하는 태도와 유사했기 때문에. 학생이 선생님께 할 표현은 아니었지만 약간 건방지다고 해야할까? 어쨌든 보는 사람으로써 매우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처음 알레르기 내과 실습을 돌 때에도 이런 편견을 가지고 봤다. 특히 펠로우 선생님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약간 남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가 정말 싫었다. 그런데 어쩌다 우연히 첫 날 오후에 그 선생님 외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잔뜩 긴장하고 외래방에 들어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첫 모습부터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그 선생님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격식이 차리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친근감있게 대하려고 하셨고 학생을 그저 '자기 외래를 참관하는 자' 가 아닌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후배'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결코 처음에 내게 마실 것을 주어서 이렇게 생각이 변한 게 아님...) 그 선생님과 약 3시간 정도를 외래방에서 있다 보니 왜 처음에 그 선생님에게 안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깨달았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않고 바로 말하는 성격이 바로 원인이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성격이고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와 유사한 성격이고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바로 적응이 되었다고나 할까? 몇 시간만에 선생님의 약간 주변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 어투에 익숙해져버렸다. 오히려 너무 과도하게 후배들을 사랑하다보니, 또 말하는 것을 좋아하시다보니 학생들을 데리고 계속 이야기를 하셔서 학생들이 피곤해하는 건 조금 문제였다.(하지만 나도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선생님의 이런 스타일도 다 이해했다. 어쩌면 내가 10년 후에는 저 선생님처럼 학생들을 앉혀놓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해서.)
4. 외래를 참관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우선 순응도(compliance)가 높은 사람이 있다. 대부분 의사들이 처방하는 대로 약도 잘 드시고 평소 습관도 좋은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대개 길어야 2~3분 앉아 있다가 나간다. 점점 증세도 호전되고 있기에 딱히 의사가 더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다음으로는 순응도가 중간 정도인 사람이 있다. 의사의 말은 들으려고 하는데 약도 띄엄띄엄 먹고 평소에도 의사가 주의하라고 한 것들을 하시는 분들. 이런 분들은 좀 더 오랫동안 외래방에 앉아 계신다. 약 쓰는 법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다시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하고 약의 용량을 증량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는 순응도가 안 좋은 사람이 있다. 이런 분들은 외래방에 아주 오래 앉아계신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의사와 거의 싸울 법한 태도도 보인다. 의사의 처방을 믿을 수 없고 자신이 생각한대로 처방해주기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분들은 증세가 호전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한약이 효과를 내려면 약재도 좋아야 하지만 그 한약을 끓이는 사람의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데 환자 본인이 마음을 편하게 안 가지고 불편하게 가지니 증세가 호전될리 만무하다.
5. 외래에서 참 특이한 환자를 보았다. 질병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진단서를 받기 위해서 온 환자. 나이는 20대 초반의 남자로 군대에 가고 싶은데 천식 때문에 못 가게 되자 자신이 건강하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받으러 온 환자였다. 누구는 군대 안 가려고 문신도 하고 폭식도 하고 별의별 일을 다 하는데 천식이나 기흉을 가지고 있는데도 군대를 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니. 하지만 이 환자는 일을 꼼꼼히 처리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병사용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반명함판 증명사진 2매가 필수인데 이것에 대해 환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증명사진이 필요하다는 말을 안해준 병무청을 원망하고 있었다. 참 이래저래 복잡한 환자였다.
6. 알레르기 내과는 평소 입원 환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알레르기 질환은 대부분이 만성질환이고 치료만 잘 한다면 웬만하면 증상이 심각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로컬에서 진단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질환을 모르고 있다가 응급으로 들어오는 환자도 적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실습돌 때에는 입원 환자가 꽤나 많았다. 무려 4명. 우선 2분은 평소에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하는 이유로 asthma나 COPD로 입원하신 분이었다. 본인들은 숨쉬기 불편하고 계속 기침하시니 힘들어하셨지만 의사 입장에서 보면 약 드시고 CXR찍으면서 경과 보면 특별히 더 악화되지는 않을거라 판단할 수 있는 환자였다. 문제는 나머지 두 분. 각각 TEN(toxic epidermal necrolysis)과 SJS(Stevens-Johnson Syndrome)환자였는데 유사한 질병의 심한 케이스와 덜 심한 케이스 정도의 차이였지 비슷한 질병을 가지신 분이었다. 이 환자분들이 문제였던 이유는 일단 이 질병을 보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펠로우를 시작하신 선생님은 자기가 의사를 한 이후로 TEN이나 SJS환자를 처음 봤다고 하고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에게 하나같이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환자들이 입원했다며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했다. //우선 TEN환자의 EMR을 봤다. 유명한 사람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이 남환은 정말 화려한 히스토리를 보이셨다. 기본적으로 lung cancer에 brain mets까지 있고, 이 전이한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하다가 또 이상이 생겨서 왼쪽 소뇌와 오른쪽 전두엽 부분을 절제하신 수술력. 거기에 화학치료 하던 중 약에 이상작용을 보이며 TEN까지.... 정말 웬만한 사람이 한 번 겪을까 말까 하는 병력을 여러 개 겹치고 거기에 희귀한 약물이상반응까지 보이시는.. 이걸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해준 신의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 신의 저주라고 해야 할지.(참고로 TEN은 약 30%의 mortality를 보인다고 한다;) // SJS 환자분은 좀 나았다. 우선 이 분은 입 쪽에 생긴 궤양 같은 걸로 처음 ER에 왔다가 응급실에서는 그냥 angioedema라며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며칠 후 이 증상이 심해져서 다시 알레르기내과 외래로 왔는데 입 주변 외에 항문이나 성기 주변도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고 한다. (외래를 보신 선생님도 이런 환자가 외래를 통해 입원하는 건 정말 드문 케이스라고 하실 정도로 특이한 경우.) 외래를 참관했던 한 친구에 의하면 SJS라는 특이한 병을 진단받고 사망률이 5%이상 된다는 말을 들은 후 이 환자분은 우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인데 사망률이 나오는 질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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