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01
#1
첫 오프를 나왔다. 오프라 함은 일반 직장인들이 ‘퇴근’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밤에 병원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병원 밖에 나가도 되는 것. 오프를 나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1년차 선생님께 들었을 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난 주 월요일 오후에 병원에 들어간 이후 벌써 열흘을 병원 밖에 나가지를 못했다. 병원 밖으로 나가도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는 상황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카운터에게 내 콜폰을 맡기면서 서로 씩 웃었다. 카운터가 폰을 세 개나 들고 있으니 너무나 무겁다고 했다. 비록 하루에 한 통 콜이 올까말까 한 내 콜폰이지만 그래도 내 의무가 카운터에게 통째로 넘어갔으니 무거울 만하다. 첫 오프는 일단 집으로 가자!
#2
첫 텀은 성형외과이다. 성형외과 인턴은 환자를 거의 보지 않고 환자 명단 정리만 한다. 수술 스케쥴 관리도 하고. 주요 업무가 환자 명단 관리이다 보니 내가 보는 환자는 모니터 상의 글씨가 전부이다. 몇 세 모 씨가 어떤 진단으로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는 알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끔 환자의 얼굴을 볼 때가 있다. EMR에 환자 사진이 올라온 경우이다. (성형외과는 수술 전후에 환자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기 위해 사진을 찍는 듯하다. 성형외과 광고에서 보이는 before, after를 생각하자.) 그런 사진을 보면 문자로만 존재하던 환자가 현실로 다가온다. 오늘도 한 환자의 사진이 나를 가슴아프게 했다.
그저 ‘김OO F/23’(나이와 이름은 지어낸 것입니다.)으로 환자 명단에만 존재했던 사람이었다. 진단명은 Scar, calf, Lt. 정도였을 테이고 수술명은 S/R 정도였을 것이다. 왼쪽 종아리에 흉터가 있는 23세 여환으로 흉터에 대해 치료를 받는 환자였다. 하지만 기록을 보다 보니 그 환자의 다리 사진이 보였다. 깜짝 놀랐다. 왼쪽 종아리 전체가 보기 흉했다. 일반적인 종아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다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의 여성에게 이런 시련이 왔나 기록을 찾아보았다. 교통사고가 원인이었다. 길가다 차에 치여서 왼 다리뼈가 부러졌다. 그리고 부러진 다리에 대한 수술을 받다 보니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 그 여자는 앞으로 수영장이나 바닷가에는 거의 가지 않을 것이다. 치료를 받는다 해도 사고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 이 여자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과연 그는 이 여성이 앞으로 겪을 고통에 대해 지금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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