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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2년] 인턴

3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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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인턴 생활과 귀차니즘으로 인해 인턴이야기를 많이 못 썼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기록을 위해 각 텀별로 있었던 일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3텀]

 

#1.

내과 인턴이 되었다. 처음으로 병동 일도 해보고 입원환자를 상대하는 일을 하였다. (이전에는 환자를 엑셀 파일에서만 보거나 응급실 환자를 봤으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의욕적으로 일했다. 실수도 많이 하고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의사로서 갖춰야 할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좋은 기회였달까?

 

내가 맡은 파트는 담췌파트(+내분비)였다. 교수님이 나름 유명하신 분이라 환자가 많았다. 나의 일상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침 7시 - 회진 가이딩

오전 - 각종 드레싱과 푸시 처리.

오후 - 신환받기

당직

 

이정도였던 것 같다. 이 파트의 특징은 ERCP 방으로 내려가는 환자를 보조수가 아니라 인턴이 직접 데리고 내려간다는 것. 그 어떤 일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 이 일이었다. 보통은 검사실에서 병동으로 환자를 내려보내라고 연락을 하면 병동에서 보조수에게 연락을 하여 환자를 내려보낸다. 그 과정에서 여러 환자가 동시에 이동을 하면 보조수 몇 명으로는 커버가 안되어 환자 이송이 늦어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격이 불같고 급하신 교수님은 이걸 못 기다리기에 인턴이 환자를 준비하고 직접 카트를 끌고 검사실까지 내려보내는 것이다. 굳이 의사가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인턴이니깐 시키는 모든 일을 했다.

 

한 번은 이 일 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환자를 내려보내라는 콜을 받고 병동으로 갔는데 그 환자를 모시러 가는 보조수가 와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보조수가 환자를 이송할 것이라 생각하고 (어차피 내가 옮기나 보조수가 옮기나 시간 차이는 없으니) 다른 일을 하러 갔다. 한참 드레싱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콜이 울린다. 레지던트 선생님.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인턴선생님, 지금 어디세요?'

'병동에서 일하는 중입니다.'

'아까 xxx 환자 내리라는 콜 못 받았어요?'

'받았습니다. 가보니깐 보조수가 환자 내리기에 다른 일 하러 왔습니다.'

.

.

.

 

알고 보니 보조수가 환자를 내리기는 했는데 엉뚱한 환자를 내린 것이었다. 교수님은 당연히 검사실이 떠나가도록 화를 내셨고 그 여파가 펠로우, 전공의를 거쳐 나에게로 온 것이다. 급히 병동으로 가서 환자를 모시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는데 (검사실이 1층에 있다.) 바로 앞에 납복을 입은 전공의와 펠로우, 그리고 교수님 아래에 있는 주니어 교수님이 보였다. 내게 여기서부터는 본인들이 모셔갈테니 가서 일 보라고 했다. 납복을 입은 일군의 사람들이 환자 침대를 끌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겨우 가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내가 맡은 파트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빵꾸낸 느낌이었다. 다행히 큰 질책은 없었으나 이 파트의 일 자체가 매일매일 매우 역동적이었다.

 

#2.

어디라고 공개적으로 말은 못하겠지만 이 병원 간호사들의 펑션이 떨어지고 인턴과의 분쟁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학생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 병원에 직접 오게 되고, 그것도 병동 간호사와 가장 접촉할 일이 많은 내과니 얼마나 긴장했겠는가. 하지만 처음 병동 간호사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어서 비교할 대상이 없어 그들을 직접 평가하기는 애매했다. 그러던 와중 사건이 발생했으니...

 

콜이 왔다.

"선생님, 환자가 아프대요."

"어디가 아픈데요?"

(다른 사람에게 '어디가 아프대?'라고 물은 후) "배가 아프대요."

"언제부터 아픈데요?"

"조금 전부터요."

"다른 증상은 있나요?"

(다른 사람에게 '뭐 또 증상 잇어?'라고 물은 후) "구역질도 있대요."

"뭐, 약 들어간 것 있어요?"

"아까 케로민을 IV로 맞았어요."

"케로민을 IV로 맞으니 구역질하죠!" (그 전 병원에서 이런 얘기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

"알겠으니깐 빨리 약 주세요."

"환자 바이탈이 어떤데요?"

"선생님, 저희 바쁘거든요? 그냥 파트 1년차 콜할게요."

뚜뚜뚜뚜

 

환자가 아픈데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콜한 간호사. 바이탈(활력징후=혈압, 맥박수) 재달라니깐 자기들 바쁘다고 안된다는 간호사.

일단 내가 맡은 파트는 프라이머리 콜(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가장 먼저 노티하는 콜)을 인턴이 아니라 1년차가 받는다. 그렇기에 저 콜은 애당초 내가 아니라 1년차에게 가는 것이 맞는 콜. 아마 간호사가 1년차 콜하면 번거로우니 쉬운 인턴에게 콜했는데 내가 까다롭게 구니깐 짜증내면서 다시 1년차에게 콜하겠다고 한 듯하다. 환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노티하는 것은 의사에 대한 예의도 아닐 뿐더러 환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나마 화가 덜 나는데 당시에는 무척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인턴을 무시하는 그 태도에서.

 

#3.

처음으로 환자 임종을 봤다. 정확히 말하면 임종을 봤다기보단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환자를 본 의사가 되었다.

 

어느 당직날이었다. 새벽 1시쯤 특실 병동에서 콜이 왔다. 환자의 새츄레이션(산소 포화도)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환자분은 임종을 얼마 안 남겨두었다고 판단되어 다인실에서 1인실로 옮긴지 한참 되신 분이었다. (다인실에 있다 돌아가시면 주변 환자분들에게 영향을 미치니 보통 임종 직전에 1인실로 옮긴다.) 언제나 받던 콜이기에 가서 환자분 한 번 보고 다시 인턴반으로 왔다.

 

2시간 후쯤 다시 콜이 왔다. 환자분이 돌아가신 것 같다는 콜이었다. 잠이 확 달아나며 당장 병동으로 뛰어올라갔다. 병실에 가보니 환자분이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계셨다. 환자를 모니터하던 기구들은 모두 환자의 임종을 알려주고 있었다. 심전도는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산소포화도는 더이상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눈 앞에 소위 말하는 시체가 있는데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머리로는 '아, 사람이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았다. 간호사는 보호자에게 급히 연락을 했고 나는 당직 레지던트에게 연락을 했다.

 

한참 후 당직 레지던트가 왔고 그보다 더 지나서 보호자가 왔다. (보호자들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외국에서도 들어와 임종을 기다렸으나 20여일동안 환자분이 살아계시자 지쳐서 각자의 집에서 잠을 해결한지 며칠 되지 않았다 한다.) 보호자들은 오열하기는 했으나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여서인지 큰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환자의 임종을 직접 지켜보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가장 애매한 위치에 있던 것은 간병인이었다. 환자의 임종 시간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1시에 와서 환자 보고 간호사가 2시에 라운딩 돌 때까지만 해도 괜찮으셨고 그 이후 간병인도 잠을 청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3시 좀 넘어 깨보니 환자가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자의 임종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간병인 덕분이었는데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보호자들의 질책 아닌 질책이 이어졌다.

 

사람이 죽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아마 꾸준히 내가 봤던 환자였다면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기에 의사를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앞으로 내 길이 환자의 임종을 많이 지켜볼 길은 아니지만 누군가 죽을 때마다 가슴아프고 눈물 흘린다면 의사라는 직업은 그에게 너무 가혹한 직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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