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뉴스 보도 중 군대에서 뇌종양 환자에게 두통약을 주었다며 군의료를 비난한 내용이 있었다. 의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몰상식한 기사라 생각한다. 진단이 어떻게 내려지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쓴 기사. 사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의사들이 어떤 과정으로 진단을 내리는지 몰라서 생기는 오해가 많다. 그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응급실 근무 중 젊은 남자가 배를 움켜쥐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옆에는 동행한 보호자(지인으로 보임.)가 있었다. 둘 다 술 한 잔 걸친 상태. 환자를 우선 침대에 눕히고 진찰을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지, 언제부터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뭐 특별히 먹은 것은 있는지 구역, 구토 증상은 있는지, 설사는 하는지 등등 문진을 하였다. 한창 묻고 있는데 보호자가 나한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이유인 즉슨 병원에 왔으면 진찰을 해야지 뭔 쓸데없는 것을 묻고만 있냐는 것. 한 성격 하는 나도 거기에 지지 않고 문진을 해야 진찰을 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 것 아닙니까!라고 소리쳤다. 응급실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응급구조사와 보안요원이 와서 보호자를 말리고서야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 환자의 복통은 과음 후 생긴 술병.
사람들은 병원에 오면 의사가 환자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병인지 알아맞추고 거기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해주기를 원한다. 적어도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를 만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바로 문진이다. 적절한 문진을 통해 어떤 질병인지 유추하고 진찰은 그것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딘가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치료는 안해주고 귀찮게 자꾸 묻기만 한다고 그 의사에게 화내지 않기를 바란다. 힘들고 짜증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환자를 더욱 잘 보기 위해 의사 역시 노력하는 중이니깐. (경험이 많고 레벨이 높은 의사가 아닌 이상 환자를 '보기만' 하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돌팔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어딘가 불편하여 병원에 갔는데 피 검사를 한바탕 했다. 그리고 결과를 들으러 가니 피검사를 또 하자고 한다. 그러면 많은 환자는 이렇게 말한다. '왜 처음부터 그 검사를 하지 않았는가?!'
왜 처음부터 그 검사를 하지 않았을까? 의사가 무능력해서? 절대 아니다.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처음부터 모든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과잉진료이다. 배아프다고 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CT를 찍는다거나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MRI를 찍는 것은 모두 과잉진료이다. 의사는 환자를 처음 봤을 때 그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바탕으로 가장 흔한 원인을 생각하고 그것에 맞는 치료를 한 이후 효과가 없거나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다음 원인을 고려해보는 과정을 거친다. 병원에 가면 맨날 검사만 주구장창하는 이유는 환자의 증상을 토대로 더욱 정확한 진단을 얻기 위해 가장 흔한 원인부터 하나하나 rule out 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가장 흔한 A질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 다음으로 흔한 B질환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검사를 하고, 또 아니면 C 질환을 생각해보기 위해 또다른 검사를 하고.
sbs 뉴스 보도 역시 이런 과정을 생각하지 않은 보도이다. 20대 초반 젊은 남성, 그것도 군인인 남성이 두통을 호소했을 때 가장 흔한 원인이 무엇일까? 꾀병 혹은 스트레스성 두통이다. 이것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당연히 두통약이다. 만약 진통제로 통증이 조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두통이 있다면 그 다음 원인 (뇌수막염, 뇌출혈, 뇌종양 등등)을 고려해봐야 하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CT와 척수천자를 시행한다. (몇 년 전 논산훈련소에서 뇌수막염으로 훈련병이 죽었을 때 그 훈련병이 호소한 증상 역시 두통이었다. 두통환자마다 뇌수막염과 뇌종양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척수천자와 CT를 매번 시행한다면 아마 부대에 남아 있는 군인은 거의 없을 것이고 군병원은 포화 상태가 될 것이다.) 이런 진단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악의적인 보도를 하는 것은 기자로서 행해서는 안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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