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02
응급실은 보통 일요일이 제일 바쁘고 평일과 토요일은 그보다 널럴하다. 보통 때에는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접수하고 바로 응급실로 들어와서 진료를 보지만 일요일에는 접수하고 밖에서 대기하다가 의사가 부르면 응급실로 들어오는 차이랄까? 그런데 이번 월요일에는 이상하게 환자가 많았다. 그것도 한 3시간 정도만 집중적으로. 내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근무한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이번 월요일에 가장 바쁠 때에는 그 일요일보다도 더욱 바빴다. 응급실 침대가 모두 차서 환자를 복도에서 진료할 정도였으니깐.
평소에도 그닥 친절하고 설명 잘하는 의사는 아니지만 바빠지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쌓여있는 초진차트를 보면서 내 마음이 더욱 급해져서인지, 환자에게 설명을 대충하고 환자 얘기도 많이 못 듣게 된다. 뭔가 예상치 못하게 바빠지니 이런 것이 더욱 심해졌다. 북적대는 응급실 안에서 환자에게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고 환자가 이해를 못했더라도 금방 다른 환자를 보러 가버리게 되는..
응급실 내 침대가 꽉 차서 복도에서 한 환자를 보았다. 모 대학병원에서 탈장 수술을 받고 어제 퇴원했는데 퇴원 후 소변을 전혀 못 봤다고 응급실로 오셨다. 병원에서 소변줄을 뽑을 때만 해도 소변이 잘 나왔는데 이상하게 퇴원 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왜 소변이 안 나오는지 그 원인은 몰랐지만 일단 응급실에서 하루 종일 못 봐서 방광이 터질 듯하게 찬 소변을 빼줄 수는 있었다. 그래서 우선 자리를 마련한 후 넬라톤을 이용하여 소변만 빼려고 하였다. 준비를 다 하고 넬라톤을 넣으려는데 환자의 부인이 소변줄을 꼽고 싶다고 하셨다. 넬라톤은 그저 1회성으로 소변을 빼주는 역할을 한다면 소변줄은 계속 소변을 그리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소변줄이 잘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가뜩이나 바쁜데 소변줄을 다시 세팅하려니 귀찮기도 했고 또 환자가 소변줄을 넣아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되랴는 생각에 그냥 소변을 한 번 빼기만 하고 소변줄은 넣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부인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소변줄을 넣어 달라고 했다. 환자는 배 터져 죽겠다고 소리지르고 부인은 소변줄 달아 달라고 아우성이고. 가뜩이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 있던 나와 간호사는 약간 짜증스런 상태에서 과장님께 노티했다. 과장님은 그냥 소변줄을 달아 주라고 하셨다.
소변줄을 넣으니 소변이 시원하게 나왔다. 양이 어마어마해서 소변주머니를 꽉 채울 정도였다. 환자분은 내게 본인을 살려준 구세주라고 계속 고마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변이 안 나오는 원인을 찾아야 할텐데 환자분은 이곳의 비뇨기과를 다니고 싶어했다. 정확히는 이곳에 입원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환자분에게 수술받은 대학병원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내 생각에 수술의 합병증으로 생긴 듯하니 그쪽에서 처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소변이 안 나오는 것 같다는 말을 환자에게는 하지 않았다. 환자에게는 그저 수술을 그쪽 병원에서 받았고 그쪽에 기록이 다 있으니 이 문제는 그 병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을 뿐.
그 환자를 잊고 다음 환자를 한참 보고 있는데 그 분이 응급실을 나서면서 내게 다가왔다.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xx대 병원에 가서 꼭 ooo 선생님이 이 병원에 입원하지 말고 꼭 그 병원에 가서 입원하라고 했다고 말하겠습니다.”고 말했다. 뭔가 고맙다고는 말하셨지만 그 뒷 문장의 뉘앙스에서 나의 태도에 엄청난 불만이 섞인 듯한 느낌이었다. 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을 내가 거부한 것이 매우 불쾌하다는 느낌이었다. 난 “네,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뭔가 찝찝했다. 의사의 길은 역시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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