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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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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 지음,


처음에 제목만 보고 고대중국의 역사를 통해 한국 고대사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인줄 알았다. 하지만 읽어보니 전혀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 부제를 보니 ‘어느 비주류 역사가의 분투기’라고 한다. 이게 조금 더 책 내용에 가깝다. 필자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수개월간 연재한 내용을 정리하여 출판한 듯하다. 


책의 전반부에는 최근에 읽은 ‘지배받는 지배자’라는 서적과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박사 과정을 미국 대학에서 보내게 된 과정, 그리고 미국과 한국에서의 교수 지원 과정이 나온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내용을 연속으로 읽게된 것이 신기하다. 국내와는 다른 미국의 교육 및 연구 여건, 그리고 교수 고용 과정을 계속 접하다보니 점점 사대주의가 생기고 있다. 국내에서만 공부했기 때문에 내가 공부에 흥미를 잃게된 것은 아니겠지만 과연 저런 환경에 놓인다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지배받는 지배자’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학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대한민국 대학의 실상을 비판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수준높은 논문을 써도 출신 학부가 SKY가 아니면 대학 교수가 되기 너무 힘들다고 한다. 학부를 중시하는 경향은 무의식중에 나 역시 갖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나 당연히 출신 대학에서 교수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갖고 있었다. 아마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디선가에서 물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르다. 어떤 명문대는 자기 대학원 출신자를 교수로 거의 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교수 임용 기준은 연구중심대학의 경우에는 연구역량과 논문작성능력이 되어야 할 것이고 교육중심대학의 경우는 교습 및 행정 능력이 되어야할 것이다. 출신 학부는 수학능력시험이라는 대한민국 최대의 시험을 얼마나 잘 쳤는지를 보여줄 뿐, 그 사람의 현재 능력을 절대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최근 일어난 사건은 부모의 능력만으로도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미국대학에서 출신학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가 기여입학제 등이 발달해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의 후반부에서는 민족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역사학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민족주의 혹은 국뽕에 취해 살았다. 환단고기급 이야기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역사책을 읽었다. 국사책은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혀 비판없이 받아들였다. 저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문제라고 한다. 그 역시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도 나와 같은 환경에서 역사를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 가서 제3자의 눈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니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우선 그는 한민족이라는 개념 자체에도 의문을 품었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19세기에나 생긴 것이고 그 전까지 과연 이땅에 살던 사람들이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나 역시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물론 수백년 이상 한 국가에 의해 지배받던 한반도의 주민들은 유럽인들보다는 더 ‘민족’에 가까운 개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정말로 ‘단군의 후예’일까? ‘라는 질문에 쉽게 예라고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저자는 한반도의 고대 문화가 무조건 일본보다 앞선다거나 중국과 대등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연구한 것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에 서주의 제후였던 진국은 무려 400km이상을 행군하여 그 지역을 정복했다고 한다. 무려 2700년 전에 서울에서 부산 거리의 원정을 떠난 것이다. 부대 규모가 어느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10km 씩 40일 행군할 동안 병사들을 먹일 식량이 있고 그 병사가 없어도 국가가 유지될 정도의 치안이 유지된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책에서는 기원전 7세기에 고조선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당시에 400km 이상의 원정을 떠날 만한 국가가 한반도 및 그 주변에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다. 또한 서기 300년 경 일본에서는 진시황릉 규모의 무덤을 건설했다고 한다. 큰 규모의 무덤은 그 무덤을 만들 인력을 고용할만한 강력한 정부가 있었을 것이라는 근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 내용이 잘 알려져있지 않다. 아마도 일본의 문화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있는 환경에서 백제의 영향이 있기 전에 일본에 그렇게 큰 무덤을 세울만한 능력이 있었다는 내용을 말하기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수년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한국사를 연구해온 미국 대학의 교수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내용을 쓴 이후 정부의 지원을 더이상 못받게 되었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게 되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한반도 내에만 갇힌다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정치인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을 확률이 있지 않았을 확률보다 훨씬 높은데도 말이다. 이런 분위기 역시 민족주의적 역사가 대한민국에 너무 많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내가 기대하던 내용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하지만 저자의 유학 경험 및 연구 내용,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적 역사학에 대한 비판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몇 년 전 교보문고에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환단고기가 쌓여있던 것을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유사역사학 서적은 읽으면 자존감이 고취되고 대단한 역사를 가진 국민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장점이 전혀 없다. 오히려 국뽕을 맞고 세계의 흐름을 못 따라갈 수 있는 위험만 높아진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농담은 정말 농담일지 궁금하다.) 순전히 본인의 선택으로 유사역사학 혹은 민족주의 역사학을 공부하는 것은 탓할 수 없지만, 학교에서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도 큰 문제이다. 당장 개천절을 10월 3일에서 다른 날로 바꾸자고 하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덧. 너무 오랜만에 나름 긴 글을 쓰니 글 내용이 매우 부족하다. 어릴 때 책 읽으면 서평을 꼭 쓰라던 어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안 썼던 나를 비난한다. 계속 쓰다보면 좋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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