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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야기/[2017년~] 진료실에서

백남기 씨 사망사건 진상위원회 조사 결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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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1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유남영)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니 할 말이 없고 조사 결과 발표에서 한 가지 웃긴(?) 점이 있어서 설명해보려 한다.


https://www.police.go.kr/portal/bbs/view.do?nttId=20523&bbsId=B0000011&menuNo=200488


위 페이지에서 심사결과를 받아서 봤다.


26쪽에 


2015. 11. 14. 초진기록에도 치료 목표가 수술을 하기에는 좋은 결과나 이점이 없는 경우를 의미하는 ‘보존적 치료’로 되어 있고 퇴원 시기는 1주일 이내라고 기재되어 있다.


라고 되어 있다.


진상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회생가능성이 없어서 수술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보존적 치료만이 예정된 피해자에게 갑자기 백선하 교수가 수술을 하게 된 과정에는 의료적 동기 이외에도 경찰과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인턴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이는 적절한 판단이 아니다. (나는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일해본 적이 없으니 그곳의 시스템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내가 일했던 병원을 기준으로 설명하겠다. 아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오면 보통 인턴 혹은 전공의가 초진을 본다. 만약 경환이면 전공의 선에서 처치 및 치료가 종결될 것이고 중환이라면 그 초진기록을 가지고 전문의가 치료계획을 세운다. 

백남기 씨는 119를 타고 실려왔고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였기에 이렇게 여유있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응급의학과 전공의 윗년차 혹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응급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재빨리 환자를 확인하고 처치 및 치료를 시작했을 것이다. 초진기록지는 그 응급실에서 가장 경험이 적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급한 환자 처치에 몰두하고 있었을테니.

그렇다면 그 기록자는 무엇을 했을까? 119 대원을 통해 윗년차 혹은 전문의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을 듣고 그것을 기록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한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처치 지시를 내릴 정도의 위치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초진 기록지에 '보존적 치료', '퇴원 1주일 이내'라는 것이 적혔을까?

그 이유는 그런 것을 적지 않으면 초진 기록지 저장이 안되기 때문이다. 향후 치료계획에 대해 알지 못한 기록자는 일단 기록 저장을 위해 가장 흔한 '보존적 치료'를 적었을 것이고 '퇴원 1주일 이내'도 의학적 판단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즉, 단순 기록 저장을 위해 빈칸 채우기 용으로 적은 것을 가지고 경찰은 '무리한 수술이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무의미한 빈칸 채우기 용 기록을 병원에서 일하면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전공의 혼자서 하루에 100명 정도 되는 입원환자 경과기록을 써야 하는 모 과는 모든 환자의 경과기록의 치료계획이 다 보존적 치료였다. 심지어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재수술하러 수술실 내려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경과기록의 치료계획은 '보존적 치료'였던 경우를 보면 그 치료계획 칸의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번 경찰청 진상위원회의 발표를 보면서 의무기록 작성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내가 설명한 이런 면을 의사들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경찰청 진상위원회처럼 오해하기 딱 좋다. 아마 의협은 공식적으로 내가 설명한 것처럼 발표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케이스들을 모아서 앞으로 의무기록 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젊은 의사들에게 알려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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