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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국내여행

서울 간송미술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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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9

페이스북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간송미술관을 갈 예정이라던 아는 형의 글. 바로 답글을 달았다. 갈 때 불러달라고, 같이 가자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간송미술관을 가게 되었다.

점심 먹고 출발했다. 한성대입구역에 도착하니 거의 2시가 다 되었다. 역에서 간송미술관까지는 가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날도 좋고 처음 와보는 동네라 구경하는 재미에 걸었다. 가는 길에 보니 ‘구보다 지글지글’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 옆에는 ‘구보다 우동’도 있었다. 구보다 우동에는 “아시죠, 구보다?”라는 말도 써 있었다. 궁금해졌다. 도대체 구보다가 뭘까. 스마트폰은 이럴 때 쓰라고 한 달에 몇 만원씩 주고 산 것이다. 바로 구글신에게 구보다가 무언지 여쭈었다. 딱히 결과가 안 나온다. 조금 더 가니 ‘구보다 스시’가 나온다. 구보다 스시로 검색하니 나온다. 구보다는 구보다 스시 사장님의 스승의 이름으로 스승을 위해 가게 이름도 구보다로 지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종로 쪽에 크게 하셨는데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성북동에 자그마하게 차렸다고 한다.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같이 스시 먹으러 갈 일이 생기면 꼭 한 번 가봐야지.

조금 더 가면 왠지 익숙한 성북동 삼거리가 나오고 간송미술관 가는 길이 나온다. 여태까지 이름만 들어봤던 간송미술관. 일 년에 딱 두 번 여는데 한 번 열 때마다 보름정도밖에 열지 않는다고 한다. 형이 출발하면서 ‘사람 많으면 어쩌지’하며 걱정하길래 내가 ‘평일 낮이라 사람 없을 것’이라고 계속 말했는데 입구를 들어가기 전부터 왠지 사람이 많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온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는다는 속설처럼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일군의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두 간송미술관을 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가 남중고도를 막 지났을 시간이었다. 그러니깐 서쪽으로 해가 조금 치우쳐졌을 때 나는 서쪽을 보고 줄을 서 있었다. 내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태양빛을 피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그늘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웃옷을 벗고 말았다. 줄은 정기적으로 줄었다. 사람을 한바탕 들여보냈다가 끊는 것을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앞에 서 있는 중년의 신사분은 옆의 일행에게 예전에는 지하철 역까지 줄을 섰던 적도 있다고 하신다. 오늘은 입구를 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나름 선방인가? 한 10여분을 기다렸다. 입구가 보인다. 건물은 딱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반 느낌이 났다. 형 말로는 1930년대에 지었는데 당시로서는 최신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80년 가량 흘렀지만 요즘 이렇게 짓는다고 해도 복고풍이라는 평을 받으며 사람들의 호평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드디어 미술관에 들어갔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오르는 계단에도 사람이 가득이다. 덕분에 간송미술관의 계단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무슨 돌인지는 모르겠지만 돌계단이 우아하게 놓여 있다. 손잡이는 더욱 우아하다. 조금 넓은 듯하지만 과도하게 넓지는 않다. 그리고 마지막에 큰 원을 그리며 뽀인뜨를 주었다. 건축학과 미학에는 전혀 조예가 없지만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워보인다.

2층에는 넓은 방 하나가 있었다. 뺑 둘러서 그림이 있는 장이 있고 가운데에도 그림이 있었다. 사실 첫 작품을 보기 전까지 이번 전시의 주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회화를 전시한 건지, 조각을 전시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전 정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술관에 왔고 즐겼으니 된 것 아니겠는가? 줄을 서서 작품을 감상했다. 조그만 종이에 그려진 한국화들 수십 점. 원래 색이 누런 것인지 아니면 세월 탓에 누래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누런 종이 위에서 뛰놀던 붓의 한 올 한 올이 느껴진다. 사람의 표정을 그리기 위해 쓴 가는 붓, 그리고 온갖 풍파를 이기고 견뎌낸 소나무를 그리기 위해 쓴 굵은 붓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느껴진다. 그렇게 두시간 가량을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의 작품 속에서 빠져 있었다. 수묵화의 멋은 서양회화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한국화의 늪에서 겨우 벗어나보니 4시를 조금 넘었다. 돌아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가까운 낙산 공원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 형이 서울 성곽도 한 번 가고 싶어 했기에. 낙산 공원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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