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8
오늘은 문경새재를 넘는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기 위해 영남의 사대부들이 넘었다는 문경새재. 영남지역에서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3갈래의 길이 있는데 죽령, 추풍령, 조령을 넘는 것이 그것이다. 이 중 죽령을 넘으면 주루룩 미끄러진다는 얘기가 있었고 추풍령을 넘으면 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다들 조령을 넘었다고 한다. (조령은 새 조에 고개 령을 써서 우리말로 새재이다.) 문경도 원래 문희(聞喜)라 하여 기쁜 소식을 듣는 곳이라는 뜻이고 문경(聞慶)도 비슷한 의미여서 다들 새재를 넘었다. 심지어 호남의 유생들도 새재를 넘기 위해 길을 돌아왔다는 얘기도 있다. 나도 이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기에 조선시대 유생의 기분으로 새재를 찾았다.
사설이 길었다. 이제는 여행 이야기로 복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문경새재를 가기 위해서는 문경터미널이나 점촌터미널로 가야 한다. 서우에서 문경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이 유일하다. 아침 6시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 50분경이 되었다. 문경가는 버스는 8시 20분에 있었다. 이전 버스는 7시 20분쯤 있는 듯하다.
문경까지는 2시간 20분가량 걸렸다. 오랜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버스에서 내리 잤는데 자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져서 밖을 보니 문경터미널에 들어가고 있었다. 문경터미널에서 새재로 가는 버스는 1시간에 두 대 정도 있는 듯하다. 나는 10시 40분쯤 도착했는데 다행히 45분에 바로 버스가 있었다. 문경도 이제 티머니가 된다. 나는 후불교통카드라 해당이 안 되었지만. 새재까지 가는 버스비는 1500원으로 티머니가 없으면 터미널 매표소에서 사면 된다.
버스에 타니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사분들이 많이 보인다. 간혹 남성 분들도 보이고. 10분 정도 달리니 문경새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관광버스였다.
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는 수많은 등산복들. 아뿔싸. 나름 사람없는 날에 오려고 평일을 골랐는데 망했다. 옆에 있던 분이 그나마 주말이 아니라서 이 정도라고 하신다. 주말에는 버스가 가득하다고…
길을 따라 제1관문으로 간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 때가 딱 문경사과축제 기간이었는지 사과를 파는 사람들이 많다. 길을 걷던 아주머니 아저씨들 중 사과를 사느라 정신없는 분들도 있다. 나도 사과가 땡기긴 했으나 얼굴에 철판을 못 까는 관계로 포기했다. 그나저나 아오모리 사과 먹으러 가야 되는데 언제 가지.
사과축제 기간이라 여러가지 행사를 많이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장도 보였고 이런 전시관도 있었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사과로 만든 저 벽은 인상적이었다. 이런 사과축제 관련 건물들에 현혹되어서 옛길박물관을 못 봤다. 꼭 봤어야 했는데.. 가다가 왼쪽에 오미자 전시관이 보이면 꼭 반대쪽에 있는 옛길 박물관을 가보길.
제1관문 주흘문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문경새재가 시작된다. 문경새재는 어렸을 때 들었던 신립 장군의 탄금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들이 문경새재에서 일본군을 막을 것을 권했으나 신립 장군은 이미 왜군이 많이 진격해서 새재에서 버티기엔 때가 늦었다면서 충주 탄금대로 병사들을 물렀다. 대신 새재에는 허수아비 군사들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왜군 정찰병이 허수아비 군사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게 되었고 지체없이 새재를 넘어 진격했다. 그 이후 새재의 중요성을 깨달은 조정에서 이곳에 문을 3개 만들었고 그 문 중 가장 경상도 쪽에 있는 문이 이 주흘문이다.
길을 가다 보니 문경새재 촬영장이 나왔다. 연예 관련 기사에서 수없이 들었던 문경새재 촬영장. 안에 경복궁도 있고 백제궁도 있고 볼거리는 많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생략.
문경새재 길은 매우 평탄했다. 등산복을 입은 분들이 많이 보였지만 거의 필요 없어 보였다. 그냥 동네 뒷산 오르는 것보다 더 편한 길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북악산 죽음의 계단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내게는 매우 힘든 길이었다. 1키로쯤 걸었는데 종아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앞으로 제3관문까지 적어도 6키로쯤 되는데… 걱정이 심해졌다.
하지만 길 옆의 아름다운 단풍이 내게 힘을 주었다. 단풍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항상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미뤘던 단풍놀이를 우연히 오게 되었다.
조령원터이다. 조선시대에 조령을 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원래는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고 고려 시대에도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 채만 복원해 놓았다.
새재길 곳곳에는 이렇게 옛길로 빠지는 길이 있다. 나는 최대한 조선시대 유생들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이런 길이 나오는 족족 이 길로 빠졌다. 이 길은 사람도 없고 바닥도 훨씬 산의 느낌이 났다. 주변 경관도 좋고. 아무래도 주 도로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데 이 길은 자연을 찾은 느낌이다.
교귀정이다. 조선시대에 새로 부임한 감사가 이전 감사와 텀체인지 하던 곳이다. 경관이 참 좋다.
중간에 기도굴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도들이 이 굴로 피했다고 한다. 기도굴로 오르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바위를 지나 10미터만 가면 기도굴이 나온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 10미터는 더 되는 느낌이었다. 길이 험해서 더 멀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기도굴 입구의 모습이다. 생각보다 좁은 입구였으나 내부는 넓었다.
지금도 성지로 유지되고 있는 내부는 이런 모습이다. 아마 사람들이 와서 기도도 도리는 듯하다.
조곡폭포이다. 사진을 찍으라고 포토스팟도 있었다. 폭포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
주변 단풍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대부분 바위산이었는데 그 위에 자란 소나무(?)같은 바늘잎나무(??침엽수)도 아름다웠다.
제2관문 조곡관이다. 이쯤오니 다리 아픈 것도 많이 잊었다. 그저 목표는 제3관문을 향해 걷고 또 걷는 것이다. 같이 오르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조금 더 일찍 와서 올랐던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중간에 색시폭포라는 곳이 있다길래 올랐는데 길도 매우 험하고 가봤더니 폭포가 전혀 없었다. 몇 시간동안 쉬지 않고 걸었더니 힘들어서 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야생동물이 와서 덮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야생동물이라니 어이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두려움이 앞섰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야생동물을 두려워 할 정도로 자연에 가까운 곳이었다.
소원성취탑이다. 소원을 빌면서 쌓는 돌탑의 종결자라고 볼 수 있다.
드디어 제3관문 조령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두 개의 선택권이 있다. 오른 길로 내려갈 수도 있고 그대로 전진하여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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