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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유럽

첫 유럽 자유여행 -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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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7년전에 갔던, 나의 첫 유럽 자유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2006년 6월 25일부터 18일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을 다녀왔다. 나중에 얘기가 나오겠지만 슬프게도 이 여행은 약 1000여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없다.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때는 2006년 6월, 대한건아 3명이 첫 유럽 자유여행을 떠났다. 항공사는 KLM.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암스테르담 스키폴Schiphol 공항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아마 영국항공?) 작은 비행기를 타고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도착했다. 휘황찬란한 인천과 무난했던 스키폴에 비해 너무나도 낡아보이던 히드로가 기억에 남는다. 가건물같은 느낌의 공항, 기억에 한참 공사중이었다. 그렇게 영국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입국심사대에 갔다. 떨리던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다. 흑인 여성이 심사대에 앉아 있었다. 영어로 말하는데 못 알아 들었다. 발음이 내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영어였다. 몇 번의 반복 끝에 무슨 이유로 왔냐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For travel”이라 답했다. 이번엔 상대가 알아듣지 못했다. “For travel”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몇 번의 반복 끝에 겨우 알아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입국심사관이 내 말만 알아듣지 못한게 아니라 미국으로 유학가는 친구의 말도 못 알아들었다는 것.

말로만 듣던 튜브Tube를 타고 런던으로 갔다. 자리에 앉으면 맞은 편 사람의 무릎이 닿을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커다란 캐리어를 놓으면 그 누구도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창밖으로 런던 외곽이 지나갔다. 흰 벽에 스프레이로 칠해진 낙서가 생각난다. 여행에서의 기억인지 영드에서의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빅토리아 역Victoria station에 내렸다. 정말 큰 역이었다. 거기서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손에는 달랑 지도와 주소 하나. 한국인 남자 셋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빅토리아 역 주변을 빙빙 돌았다. 한참을 찾은 끝에 겨우 들어간 호텔. 내가 지금껏 봤던 호텔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이곳은 영국이니 그런게 중요할리가!

짐정리를 마치고 런던 구경을 나갔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걸었다.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사먹었다. 엄청나게 높은 영국 물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음식 선택권은 그리 넓지 않았다. 빅맥도 나름 부담이었다. 

넉넉한 돈을 가져왔지만 대부분 유로화였고 런던에서 보낼 4일 간 쓸 파운드화는 상당히 빡빡하게 가져왔다. 게다가 파리로 이동할 유로라인Euroline이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한국에서 검색했던 가격의 몇 배. 그로 인해 우리가 쓸 수 있는 돈은 더욱 줄었다. 결국 영국에서 나름 기념품도 사고 잘 먹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국에서 비싼 돈 주고 음식을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영국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맥도날드가 있던 큰 거리와 웨스트민스터 사원, 탬즈강과 런던아이가 플래쉬카드처럼 기억에 남는다.

 

영국에서 총 3일인가 4일을 있었는데 갔던 곳은 대영박물관, 버킹엄궁전, 피카딜리광장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무료였다는 것이 충격이었던 대영박물관, 그리고 대영박물관 안팎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교복을 입고 있던 영국 학생들. 수많은 그리스 조각들과 한국관이 인상깊었다.

피카딜리 광장에서 먹었던 중국요리집은 무난했다. 맛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국에서 먹은 음식치고는 괜찮았다. 그 때는 관광책자에 나온 음식점만 다녔다. 그냥 음식점은 왜 안 갔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어딜 가나 맛이 비슷했겠지. 호텔에서 6파운드를 내고 먹었떤 조식은 경이로웠다. 우리돈으로 1만원이 넘는 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4000원을 주고도 그것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영국에서 먹었던 많은 음식들은 Sainsbury가 제공하였고 그게 가장 무난했다.

하루는 너무나도 배고팠던 한국남자 셋이 피자헛에 들렀다. 점심 부페(?)가 할인이었다. 상당한 거금이었지만 우리는 그냥 질렀다. 문제는 그 부페에 음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남자 셋이 음료 2잔을 시켰고 종업원은 그렇게 시킬 경우 1명은 절대 음료를 마시면 안된다고 경고하였다. 우리는 그러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피자를 먹으면서 음료를 마시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우리는 조금씩 나눠먹었고 그 장면이 종업원에게 딱 걸렸다. 결국 3명의 음료비를 모두 내었고 어글리코리안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영국에서 좋았던 기억은 축구장에 간 것이다. 축구 시즌이 아니었기에 말 그대로 ‘축구장’만 갔다. EPL에 대해 거의 모를 때였기에 알고 있떤 축구팀 중 런던에 있다고 들은 두 팀, 아스날Arsenal과 첼시Chelsea의 홈구장을 방문하였다. 지금같으면 White hart lane이나 Craven cottage등 런던에 있는 수많은 축구 경기장을 갔겠지만 그 때는 유럽축구에 대해 문외한이었으니. 하지만 그래도 그 경기장은 무척이나 좋았다. 당시 아스날의 홈구장은 하이버리 스타디움Highbury stadium이었다. 지금 아스날이 쓰고 있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빅토리아 역 부근에 위치한 숙소에서 런던 북부까지는 매우 긴 여정이었다. 2층 버스를 타고 왕복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린 끝에 하이버리스타디움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도 한참을 걸었다. 그 때 날씨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전형적인 영국날씨. 한국인 셋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나는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게 되었다지.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주택가 한 가운데 있었다. 골목길에서 경기장이 바로 보이고. 1913년 하이버리에서 아스날이 첫 경기를 가질 때에는 지역 주민들 한 가운데에서 경기를 치렀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큰 구단이 아닌.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Stamford bridge 역시 가는데 오래 걸렸다. 인상깊었던 것은 동네 분위기가 다른 런던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뭔가 부자 동네의 향기가 난달까나. 경기장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스탬포드브릿지에서는 기념품을 샀다. 돈이 너무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가져가는 게 있어야지. 그 때 샀던 반팔 셔츠 2벌은 지금도 가끔 입는다.

 

런던에서 파리로 가야 하는 날 밤, 늦은 시간. 아마 21시인가 22시쯤. 시커먼 어둠 속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Victoria coach station의 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리는 제일 뒷자리 한가운데. 잠시 후 버스는 출발했고 우리는 런던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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