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이야기/유럽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7일차 @Bad Wildbad(검은숲)

반응형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일차 @도쿄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2일차 @도쿄-뮌헨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3일차 @뮌헨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4일차 @뮌헨 (1)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4일차 @뮌헨 (2)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5일차 @뮌헨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6일차 @퓌센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7일차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8일차 @뉘른베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9일차 @레겐스부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0일차 @뷔르츠부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1일차 @밤베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2일차 @로텐부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3일차 to 하이델베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4일차 @ 하이델베르크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5일차 to Vaihingen an der Enz via Frankfurt am Main
Null의 20일간의 독일 여행 - 16일차 @ Vaihingen an der Enz 

2011.01.31

오늘은 Schwarzbald, 영어로는 Black Forest, 우리말로는 검은 숲을 보러 갑니다. 아마 제가 오늘 가는 곳도 그다지 많은 분들이 가보지는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사실 저도 어딘지 전혀 모르고 고모님과 고모부님만 졸졸 쫓아갔으니깐요.

Vaihingen an der Enz에서 S-bahn을 타고 Pforzheim에서 한 번 갈아탄 후 Bad Wildbad에 갔습니다. Pforzheim을 떠난 열차는 여태까지 독일에서 봐온 광경과는 사뭇 다른 광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평지만 있던 좌우 창밖에는 알프스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높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평지보다는 산이 많아졌고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나무들도 보였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는 완연히 계곡의 느낌이 나는 곳에 들어섰습니다. 열차의 왼쪽에는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좌우에는 거대한 산들이 열차를 노려보고 있는 풍경. 강원도 계곡에 온 듯한 느낌이었죠. 무언가 산이 많이 보이니 우리나라에 온 듯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풍경 구경을 하다보니 Bad Wildbad에 도착했습니다. 산과 산 사이의 좁은 땅에 위치한 마을이었지만 나름 규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들더군요. 어쨌거나 고모님 부부를 따라 갔습니다. 무슨 케이블카 같은 것을 타는 곳이었는데… 가보니 문을 닫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이라 사람이 적어서 문을 닫았나 봅니다. 모두가 좌절하고 있던 찰나, 고모부님이 출동하십니다. 어디론가 가시더니 누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나와 J는 그저 멀뚱멀뚱 구경만… 잠시후 승합차 한 대가 옵니다. 아마 우리처럼 낭패본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는 셔틀같은 것인가 봅니다. 안에 타 보니 우리 말고도 사람들이 몇 더 있습니다. 물론 모두 독일인들. 고모님과 고모부님은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J는 그저 이 차가 어디로 가는지 창밖만 바라봅니다. 승합차에 타고 있던 독일인들도 이런 곳에 동양인들이 오니 신기하게 본 것 같습니다. 아래는 Bad Wildbad의 모습입니다.

차는 산길을 구불구불 오르더니 멈춥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걸어야 합니다. 검은 숲을 온 목적도 하이킹이었지만 산 밑에서부터 오르는 건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차를 타고 어느 정도까지 오르는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걷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하얀 눈길입니다. 눈이 온 이후 사람들이 몇명 지나간 듯하기는 하지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는 않아 보입니다. 길 이정표도 있기는 하지만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할 뿐. 그저 고모님 부부만 죽어라 따라갈 뿐입니다.

눈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시계도 안 보고 걸었던 것 같네요. 고모님께서 집에서 차를 계속 주셔서인지 화장실 신호가 계속 왔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어디? 숲입니다. 간이화장실이라도 있을리가 만무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은 포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일을 해결했습니다. 가다보니 일보기 적당한 곳에는 누가 이미 일을 보고 간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역시 인간의 상식(?)은 국적을 초월하는 듯합니다.

‘검은 숲’이라고 했는데 제가 갔을 때에는 전혀 검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얀 숲이 맞는 표현이었죠. 위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그간 독일에 내린 엄청난 눈들은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까마득히 솟은 나무가 좌우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나무 위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제일 위에 있는 붉은 옷 입고 계신 분이 고모부님인데 그 분 키가 190cm쯤 됩니다. 그러면 저 나무는 도대체 몇 미터인지..)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지는 White Forest. 한참을 걷다 보니 한 쪽에 나무가 없는 곳도 나왔습니다.

하늘이 저렇게 파랬다니. 엄청나게 높은 나무들 때문에 보이지 않던 하늘이 이제서야 보입니다. 그리고 출발할 땐 덜덜덜 떨면서 걸었는데 이젠 겉옷이 괜히 땀만 더 나게 하는 물건으로 변해있었죠. 숨쉬는 게 행복했습니다. 차고 맑은 공기가 내 코를 통해 기관지로, 그리고 폐포에서 모세혈관과 산소교환을 하는 느낌이 매우 일품이었습니다. 길도 계속 평탄한 길이라 그리 숨차지도 않았습니다. 정말로 좋은 하이킹 코스였습니다. 그렇게 잠시 파란 하늘을 감상한 후 또 걸었습니다. 무언가 길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 곧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나무들이 좌우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감시하다가 이제는 감시가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조금 걷자 나무가 없는 넓은 벌판 같은 곳이 나오고 가운데 목재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Grünhütte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왜이리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 했더니 다 이 안에 있었나 봅니다. 자리를 잡습니다. 독일의 여느 술집처럼 자연스레 합석을 합니다. 8명쯤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에 약 10명쯤이 앉았는데 그 중 우리 일행 빼고는 모두 혼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고모님이 그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고모님 댁에 온 이후 고모님과 같이 다니면서 가장 놀란 것이 바로 모르는 사람들과도 너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고모님의 개인적인 성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볼 때에 별로 그런 듯하지는 않습니다. 고모님 바로 옆에 앉은, 한 40대처럼 보이는 사람은 Karlruhe에 있는 대학교 교수라고 합니다. 취미를 즐기러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그 취미가 무엇이냐면… 바로 크로스컨트리입니다. 위에 있는 사진에서 보이는 저 수많은 스키 플레이트는 skiing을 위한 것이 아니라 크로스컨트리를 위한 것입니다. 어쩐지 우리가 걸어온 길에 사람 발자국은 거의 보이지 않고 그냥 한 줄로 쭈욱 나 있는 자국만 많다 했더니 그게 다 크로스컨트리하는 사람들이 남긴 자국이었나 봅니다. 이곳을 떠날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 사람들도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듯합니다. 괜히 동계올림픽에서 유럽사람들이 크로스컨트리를 휩쓰는 게 아니었습니다.

Grünhütte에서는 Heidelbeerpfannkuchen와 Grünhütte Heidelbeerwein을 먹었습니다. 블루베리로 만든 팬케이크와 와인인데 맛이 아주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 달고 맛있었습니다. 특히 와인은 상당히 도수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음식의 사진이 보고싶은 분은 여기에 가보세요^^;

이제 하산을 해야 합니다. 오를 때와는 다른 길로 갑니다. 오를 때에는 차를 타고 어느 정도 고도까지 올라왔지만 내려갈 때에는 걸어서 Bad Wildbad까지 내려가야 하니깐요. 그런데 내려가는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로 사정이 매우 안 좋았죠. 아까 왔던 길은 바닥에 ‘눈’이 쌓여 있었는데 내려가는 길에는 곳곳이 ‘얼음’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산이 있고 반대쪽에는 낭떠러지가 있는 길이다 보니 햇볕이 충분히 들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린 느낌.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 사진을 찍고는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잘 보면 Brunnen이라고 써 있는데 ‘우물’이란 뜻입니다. 이름답게 물이 졸졸졸 흐르는데 이 물이 겨울에도 끊임없이 흘렀나봅니다. 물은 계속 넘치고 그 넘친 물들은 증발하지 않고 그대로 길을 따라 흐르고, 추운 날씨에 흐르던 물들은 얼고 또 그 위에 물이 지나가다 또 얼고. 이를 얼마나 반복핸는지 이 우물 주변 길은 온통 얼음천지였습니다. 그래서 평소 웬만하면 엉덩방아와는 거리가 멀던 저도 넘어지고 말았네요-ㅁ-;

내려오는 길에서 왜 이곳이 ‘Schwarz’bald인지 깨달았습니다. 해가 지려면 적어도 2시간 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려가는 길은 벌써 어둑어둑했습니다. 차가 다닐 수 있게 닦아놓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보이던 반대편 산에는 푸른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차 있어서 ‘까맣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순간 2000년 전으로 타임워프를 했습니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게르만 야만인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잔뜩 긴장한 로마병사들. 그리고 들어선 엄청난 숲.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침엽수림밖에 없고 수십년, 아니 수백년은 되었을 나무들은 하늘을 온통 뒤엎으며 로마병사들로부터 태양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야만인들의 함성소리. 아마 이곳은 로마 병사들에겐 지옥같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Bad Wildbad에 돌아왔습니다. 열차 출발까지는 아직 꽤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구경을 살짝 하기로 했습니다. 계곡물을 따라 상류로 조금 가보니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납니다. 물론 우리나라 계곡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면서 주변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기고, 동시에 검은 숲까지 즐기려는 수많은 유럽인들이 이곳을 방문할 듯합니다. 주변 구경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는 S-Bahn을 타고 Vaihingen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검은 숲에서의 하루가 끝이 났습니다.

반응형